AI 슈퍼사이클 시대, 초과이윤의 민주적 통제를 위하여

<글쓴이 최광은> 정직한 모색 운영위원입니다. 민주주의, 불평등, 권력구조를 중심으로 연구를 하고 있고, 대학에서 정치학도 강의하고 있습니다. 최근 펴낸 책으로는 <대통령제의 종언>(2025, 정직한 모색)과 <위성정당 OUT!>(2024, 정직한 모색)이 있습니다. 이메일 gwangeun@gmail.com

1. 최소 30조원을 정규직 노동자가 나눠 갖기로 하다

2026년 5월 20일, 한국에서 가장 큰 기업의 한 사업부 노사가 잠정 합의에 도달했다. 합의 장소는 회사 회의실이 아니라 경기지방고용노동청이었고, 중재자는 고용노동부 장관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기업의 노사가 장관의 중재로 한 해 영업이익의 분배 공식을 결정한 자리였다. 합의의 핵심은 단순했다. 향후 10년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사업성과의 10.5%를 성과급 재원으로 사전 고정한다는 것. 올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최소 300조 원대로 전망된다. 이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반도체 부문의 영업이익에 10.5%를 적용하면, 약 30조 원 안팎의 금액이 반도체 부문 임직원 7만 8천 명에게 분배될 재원으로 묶인다. 특히 메모리 사업부 직원은 본봉 1억 원 기준 최대 6억 원의 성과급을 자사주 형태로 받게 된다. 적자가 유력한 비메모리 사업부 직원도 최소 1억 6천만 원을 보장받는다.

파업이 일단 불발되자 시장과 언론은 환호했다. 주가 하락이 멈췄고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을 염려한 여당은 안도했다. 협력업체들은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같은 시간 다른 목소리들도 터져 나왔다. 양대 노총은 협력업체 노동자까지 성과 배분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성명을 냈고,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삼성전자의 막대한 이윤의 출처에는 외면당한 농민의 피땀이 있다”며 무역이득공유제와 초과이윤세 도입을 촉구했다. 한편 한 주주단체는 노사 합의가 주주에게 귀속돼야 할 잔여재산청구권을 침해한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같은 사안을 두고 대기업 정규직 노조, 양대 노총, 농민, 주주 등이 동시에 다른 목소리를 냈다. 결국 그 합의는 올해만 최소 30조 원에 달하는 금액을 7만 8천 명에게 분배하는 방식의 결정이었다. 그 분배 박스 바깥에 있는 사람은 부러운 또는 시기 어린 눈빛을 보냈다.

단순한 노사 분쟁처럼 보였던 이 사건은 사실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먼저 그 배경을 들여다보자.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상한 없이 성과급 재원으로 사전 고정하는 방식은 이번에 삼성전자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2021년 SK하이닉스에서 성과급 산정 기준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했던 ‘최태원 상소문’ 사건 이후 노사가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하는 산식에 합의했고, 2025년 9월에는 그 기본급 1000% 상한선을 폐지하기로 했다. 이 사례가 한국 대기업 노사관계에 등장한 ‘영업이익 N%’ 룰의 시초였다. 2026년 봄 삼성노조의 요구는 이 선례를 뒤따른 것이었지만, 이와 달리 전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삼성전자 노사의 합의 이후 이 흐름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현대차노조는 지난해 순이익의 30%, 기아와 LG유플러스노조는 영업이익의 30%, 삼성바이오로직스노조는 영업이익의 20%를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카카오, HD현대중공업 등 자동차·조선·IT·통신을 가리지 않고 ‘영업이익 N%’ 요구가 줄을 잇는다.

올해 1월과 2월, 대법원은 의미심장한 판결을 잇따라 내놓았다. 두 사건 모두 퇴직자들이 회사에서 받은 경영성과급을 평균임금에 포함해 퇴직금을 다시 계산해 달라고 낸 소송이었다. 삼성전자 사건(2026년 1월 29일 선고)의 쟁점은 성과인센티브(OPI)였고, SK하이닉스 사건(2월 12일 선고)의 쟁점은 생산성격려금(PI)과 초과이익분배금(PS)이었다. 흥미롭게도 대법원은 같은 회사의 성과급이라도 그 성격을 갈랐다. 매출 목표 달성처럼 노동자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지표에 연동된 성과급은 임금으로 인정한 반면, 영업이익이나 경제적 부가가치(EVA)처럼 노동자가 통제하기 어려운 결과에 연동된 성과급의 임금성은 부정했다. 후자의 핵심 논거는 이러했다. 영업이익이나 EVA의 발생 여부와 규모는 노동자가 제공하는 노동의 양과 질에 비례하기보다, 자본 규모와 시장 상황 등 노동자가 통제하기 어려운 외부 요인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되므로, 그 성과급을 노동력의 대가인 임금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판결의 일차적 의미는 분명하다. 영업이익 등과 관련된 성과급은 임금이 아니므로 퇴직금 산정의 기초인 평균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노동자에게 불리한 결론이다. 그런데 이 판결은 본래 의도와 무관하게 또 다른 의미에서 정곡을 찔렀다. 영업이익이 노동만의 산물이 아니라 노동자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의 결과물이라고 대법원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곧바로 다음 질문이 따라 나온다. 노동의 결과물이 아니라면 그 영업이익은 대체 무엇이며, 누구의 것인가?

올해 3월부터 시행된 이른바 노란봉투법(노조법 제2·3조 개정)은 크게 세 가지 변화를 담았다. 먼저 사용자 범위를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넓혔다(제2조 제2호). 이어서 노동쟁의의 대상에 구조조정이나 사업부 매각처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를 추가했다(제2조 제5호). 또한 쟁의행위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노조와 노동자의 배상 책임을 제한했다(제3조). 이 가운데 이번 사안과 맞물린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손해배상 책임의 제한이다.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위험이 줄면서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쟁의에 나설 부담이 크게 낮아졌다. 한편 노동쟁의의 대상을 임금을 넘어 경영상의 결정으로 확대한 것은, 이번 성과급 교섭의 직접적인 근거는 아니었으나 노사 교섭의 무대가 앞으로 임금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신호였다.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은 본래 임금 교섭의 영역에서 출발했으나, 이제 임금을 넘어 이익의 분배를 다투는 문제로 번지고 있다. 정규직 노조에 유리하게 작용한 두 변화와 달리,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을 넓히려던 원청 사용자성 확대는 하위법령 단계에서 그 실효성이 제약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세 흐름이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한다. 대법원은 영업이익이 임금과는 다른 것, 즉 노동의 영역을 넘어선 외부 요인의 산물임을 공인했고, 노란봉투법은 노사 교섭의 범위를 임금 너머로 확장하고 쟁의행위의 부담을 덜어내는 흐름을 법으로 뒷받침했으며, ‘영업이익 N%’ 룰의 확산은 노동자가 임금이 아니라 영업이익 자체의 지분을 요구하는 관행의 제도화를 촉진하고 있다. 세 흐름이 함께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한국 대기업 노사관계의 다툼이 이제 ‘임금’을 넘어 ‘잉여이익의 분배’를 둘러싼 싸움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자본주의의 분배 체제 자체가 재편되고 있는 결정적인 한 장면이다.

성과급 분배를 둘러싼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대체로 세 갈래다. 첫째는 반도체 공장이 멈추면 국민경제가 흔들린다는 국민경제 위협론으로, 주로 정부와 사용자, 주주 쪽에서 나온다. 둘째는 회사가 낸 이익을 노동자가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는 정규직 노조 옹호론으로, 노조 자신과 일부 노동자주의 좌파가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는 노조가 정규직 조합주의에 갇혔다는 노동운동 자성론으로, 정부와 사용자에는 비판적이면서도 삼성 정규직 노조를 선뜻 편들지는 못해 곤혹스러워하는 진보 진영 일각의 견해다. 이러한 입장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질문을 공유한다. 회사가 낸 이익을 회사와 직접 관련된 주체들 사이에서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국민경제 위협론은 회사와 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요구하고, 정규직 노조 옹호론은 정규직 노동자의 이익 극대화를, 노동운동 자성론은 관련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익까지 고려하자고 한다. 저마다 강조점은 분명히 다르지만, 분배의 무대가 사업장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 이익이 애초에 어디서 왔는지는 누구도 캐묻지 않는다. 세 시선 모두 기존의 분배 공식 안에 갇혀 있다. 기존의 공식 바깥에서 이 사건을 다시 바라보면, 삼성 노사의 이번 합의는 새로운 분배 질서 수립의 신호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이 잉여이익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이 이익의 정당한 청구권자는 누구인가?

2. 막대한 이윤의 원천은 무엇인가

이 거대한 잉여이익이 어디서 오는가에 답하기 위해 대법원이 남긴 단서에서 출발해 보자. 대법원은 영업이익이 노동의 영역을 넘어서는 외부 요인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그 외부 요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누가 그것을 만들었는지까지는 묻지 않았다.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먼저 이번 반도체 호황의 거시적 배경부터 살펴보자.

지금의 호황은 과거 메모리 사이클의 연장선이라기보다 AI라는 산업 인프라 전환의 한 국면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초기에는 AI 모델을 훈련시키는 데이터센터가 수요를 이끌었지만, 이제는 학습된 모델을 실제로 구동하는 추론 단계, 스스로 작업을 수행하는 AI 에이전트, 나아가 로봇처럼 물리 세계에서 작동하는 AI로까지 수요의 무대가 잇따라 넓어지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단계가 열릴 때마다 메모리 수요가 비선형적으로 폭발한다. 한국이 그 흐름의 중심에 놓인 이유는 메모리, 배터리, 디스플레이, 정밀제조, 전력장비, 로봇 및 산업자동화에 이르기까지 공급망의 거의 모든 단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삼성을 비롯한 몇몇 기업이 단독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반세기에 걸친 한국 산업 전체 역량의 축적이 빚어낸 것이다. 이러한 AI 슈퍼사이클이 없었다면, 미중 갈등의 반사이익이 없었다면, 특히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없었다면, 이 막대한 영업이익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외부 조건은 삼성의 노사가 노력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할 사실이 있다. 슈퍼사이클이라는 외부 조건은 영업이익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같은 조건이 주가 상승과 배당 확대를 함께 만들어낸다. 영업이익이 늘면 주가가 오르고, 당기순이익 일부는 배당으로 환원된다. 삼성전자는 2024~2026년 주주환원 정책에 따라 연간 약 9.8조 원의 정규 배당을 시행 중이며, 2025년 결산에는 1.3조 원의 특별배당까지 더해졌다. 여기에 자사주 매입·소각을 합치면 주주에게 분배되는 부분은 훨씬 커진다. SK하이닉스 역시 2025년 현금배당과 대규모 자사주 소각을 통해 막대한 금액을 주주에게 환원했다. 즉 슈퍼사이클이라는 동일한 외부 조건이 한쪽에서는 노동자의 성과급으로, 다른 쪽에서는 주주의 자본이득과 배당으로 동시에 흘러간다. 둘은 같은 원천에서 나온 것이며 분배 경로만 다를 뿐이다.

이제 좀 더 바닥을 들여다보자. 깊고 넓은 추출의 사슬이 드러난다. AI 연구자 케이트 크로포드는 『AI 지도책(Atlas of AI)』(2021)에서 AI가 ‘클라우드’라는 비물질적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땅에서 캐내는 광물, 저임금 노동자에게서 끌어내는 노동, 그리고 사람들의 모든 행동과 표현에서 거둬들이는 데이터라는 세 겹의 추출 위에 서 있는 산업이라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AI는 첨단의 외양을 한 추출 경제의 연장선에 있다. 이번 호황의 주역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그리고 그것을 품은 AI 인프라 전체가 바로 그렇다. 콩고의 코발트, 칠레의 리튬, 중국의 희토류, 호주의 보크사이트 등은 식민지 시대 이래의 불평등한 글로벌 분업 구조 안에서 추출된 광물들이다. 한국의 반도체 공장이 소비하는 전력은 중소도시 하나의 사용량과 맞먹는다. 그 전력망과 용수 인프라를 한국 사회 전체가 부담한다. 앞서 한 농민단체가 짚었듯이, 수도권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 비수도권 농촌에는 거대한 송전탑이 세워지고, 농업용수가 부족해도 공장에 먼저 관로가 깔린다. 막대한 영업이익의 일부를 가져가는 삼성 정규직 7만 8천 명의 노동자와 달리, 협력·하청업체의 수십만 노동자, 그 아래 재하청에 묶인 더 영세한 노동자, ‘반올림’이 함께 해 온 직업병 피해 노동자는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런데 추출의 사슬은 크로포드가 언급한 세 층위에서 멈추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여기에 국가가 시민의 세금으로 떠받친 또 하나의 층위가 더해진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정부의 막대한 지원이 그것이다. 이른바 ‘K-칩스법’으로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은 반도체 대기업의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2021년 3%에서 2022년 8%, 2023년 15%로 끌어올렸고, 2025년 개정으로 다시 20%까지 상향했다. 반도체 연구개발(R&D) 세액공제 기한도 2031년 말까지 연장되었다. 이러한 세제 혜택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덜어낸 법인세 부담은 이미 수조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더해 올해 1월 29일에는 반도체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 이르면 올해 3분기 중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그간 개별 사업·예산으로 흩어져 있던 지원을 대통령 소속 특별위원회와 별도 특별회계로 묶어 상시 체계로 전환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용수·폐수·도로 설치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우선 부담하도록 했다. 나아가 반도체 기반시설을 전력수급기본계획과 국가수도기본계획에까지 반영하도록 규정했다. 반면 미국이 비슷한 시기 자국 칩스법에 보조금을 받은 기업의 횡재성 초과이익을 정부와 나누는 환수 조항을 명시한 것과 달리, 한국에는 그런 환수 장치가 없다. 시민이 낸 세금과 사회가 떠안은 유·무형의 부담이 반도체 산업의 영업이익으로 환원되는 사슬이 제도적으로 견고하게 짜여 있으나 사회로 되돌아오는 몫은 없다.

나아가 AI 산업이 반도체 수요를 폭발시키는 동력은 과거와 현재의 인류가 만들어낸 데이터, 그리고 그것을 소비하는 사용자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매일 SNS를 사용하고 검색과 클릭을 반복하는 활동은 AI 학습 데이터가 되며, 이는 다시 메모리 수요로 이어진다. 이 모든 추출과정의 결과로 올해만 최소 3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형성되는 것이다. 삼성전자 노사의 노력은 그 필요조건이지만, 이는 특정한 외부 조건 아래에서 이루어진 사회적 추출 전부를 설명하는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즉, 이 막대한 영업이익의 원천은 사업장 테두리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이 그 바깥에 존재한다. 대법원이 인정한 그 ‘외부 요인’은 단지 추상적인 시장 상황이 아니라, 광범위한 추출의 사슬에 묶인 모든 노동자와 시민, 그리고 자연이다.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우리는 다음 질문에 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형성된 이 결과물에 대한 청구권은 사업장 안의 세 당사자, 곧 주주와 경영진과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있는가?

3. 누가 정당한 청구권자인가

영업이익을 둘러싼 청구권자는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다. ‘박스 안’의 주주, 경영진, 노동자, 그리고 ‘박스 밖’의 조직화되지 않은 주체다. 앞의 셋은 이미 분배 테이블에 앉아 제 몫을 주장하고 있고, 마지막 하나는 테이블에서 아예 배제되어 있다. 테이블에 앉은 세 주체의 청구권이 정말 그만큼 정당한지, 그리고 테이블 바깥의 주체에게는 정말 아무런 몫이 없는지를 차례로 따져보자.

먼저 주주가 있다. 이들을 종종 회사의 주인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 통념은 근거가 희박하다. 주주가 소유하는 것은 회사가 아니라 회사가 발행한 주식이며, 주식은 회사에 대한 직접적 소유권 증서가 아니라 유한한 권리들의 묶음에 불과하다. 채권자가 채권을 가졌다고 회사를 소유한다고 말하지 않듯, 주주도 마찬가지다. 법인격 독립성과 주주 유한책임이라는 두 원리가 이 사실을 법 제도로 확인한다. 회사가 주주와 별개의 법적 주체이기에, 주주는 회사가 진 채무를 변제할 책임이 없고 다만 출자한 자본을 잃을 위험만 진다. 만약 주주가 회사의 소유권을 공유한다면 회사의 채무도 함께 짊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주는 회사 채무로부터 자기 자본을 온전히 보호받으면서도, 이익에 대해서는 공유할 권리를 주장한다. 이 비대칭이 주주자본주의의 핵심 모순이다. 주주의 정당한 청구권은 출자한 자본에 대한 합당한 수익이지, 회사가 낸 모든 잉여이익에 대한 일차적 청구권이 아니다. 한 주주단체가 이번 노사 합의를 두고 주주에게 귀속될 몫을 침해한다며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은, 이 신화가 한국 사회에 여전히 뿌리 깊게 박혀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은 경영진이다. 이들의 보수는 보통 기본급여에 더해, 회사의 경영성과나 주가 상승에 연동되는 성과급으로 구성된다. 회사 실적이 좋아질수록 그 성과연동 보수도 함께 불어나는 구조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이 외부 조건의 산물이라면, 경영진이 통제하지 못한 요인으로 이익이 늘어날 때 그 보수가 덩달아 늘어나는 구조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경영진은 시장과 사회가 빚어낸 몫에 올라타는 것이지, 그 조건 자체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게다가 경영진의 보수는 정관이나 주주총회 결의로 큰 틀이 정해진 뒤, 실무에서는 이사회가 그 범위 안에서 구체적인 보수와 성과급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이사회가 경영진의 영향력에서 온전히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렵다. 성과를 평가하는 자와 그 성과로 보상받는 자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구조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제 노동자다. 가장 미묘한 위치에 있다. 모든 노동자는 자신이 제공한 노동력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청구할 권리를 마땅히 누려야 한다. 임금 청구권을 넘어서는 권리의 범위와 그 크기는 보통 노사의 힘겨루기를 통해 정해진다. 삼성 정규직 노동자의 이번 성과급 요구가 정확히 어떤 성격이었는지 좀 더 따져보자. 임금은 회계상 비용으로 처리되어, 영업이익을 계산하기 전에 이미 빠져나간 몫이다. 영업이익은 그 임금을 비롯한 모든 비용을 제하고 남은 이익이다. 따라서 영업이익의 10.5%를 성과급 재원으로 청구하는 것은 노동력의 대가, 곧 임금을 달라는 요구와는 층위가 다르다. 그것은 비용을 제하고 남은 잉여이익에 대해, 그 지분을 청구할 권리를 제도화하자는 요구다. 이러한 권리는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앞에서 본 대법원의 논리를 떠올려 보자. 영업이익은 노동의 양과 질에 비례하기보다 외부 요인에 더 크게 좌우된다고 했다. 이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영업이익의 지분 청구는 노동력을 제공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온전히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리고 이 의문은 노동자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외부 조건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전유하여 제 몫을 키우려 한다는 점에서는 주주도 경영진도 마찬가지다. 다만 노동자의 경우, 이러한 청구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라는 외피를 쓰고 있어 그 성격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이 청구권의 한계를 가늠하기 위해 다음 통계를 보자. 2024년 귀속 기준 한국 노동자의 평균연봉은 약 4,500만 원, 중위연봉은 약 3,417만 원이다. 그리고 상위 0.1%에 해당하는 약 2만 명의 평균연봉은 약 9억 9,937만 원으로, 전체 평균의 약 22배에 달한다. 삼성 반도체 부문에서 합의된 최대 보상, 즉 본봉 1억 원에 성과급 6억 원을 더한 약 7억 원은 이 상위 0.1% 초고소득 구간에 해당한다. 성과급 6억 원만 떼어 봐도 평균연봉의 약 13배, 중위연봉의 약 18배다. 삼성 노동자 한 명이 1년 성과급으로 받는 금액이, 저임금 노동자 수십 명의 한 해 소득과 맞먹는다. 이것은 통상적인 임금과는 성격이 분명히 다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견해가 있다. 일부 좌파는 단순한 임금인상을 넘어 잉여가치의 분배를 요구한 삼성노조의 이번 싸움을, 사적 소유에 기초한 자본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읽으며 그 혁명적 의의를 강조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사태의 실상은 오히려 정반대다. 노동 내부의 초격차라는 결정적인 사실을 응시하면 그런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 없다. 박스 안 7만 8천 명의 노동자와 박스 밖 다수의 노동자를, 우리는 여전히 ‘자본에 맞선 하나의 노동’으로 묶을 수 있는가. 이것은 박스 안 노동자를 탓하려는 물음이 아니다. 그들 역시 나름 치열한 경쟁과 노력을 거쳐 그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문제는 개인의 선택이나 잘잘못이 아니라, 어느 사업장 어느 부문에 속했느냐가 분배상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갈라놓는 구조에 있다.

한쪽은 영업이익의 일정 지분을 사전 합의로 가져가고, 회사가 성과를 올릴수록 임금 바깥의 소득이 그에 비례해 늘어난다. 형식상 노동계약 안에 있지만, 분배의 관점에서는 이미 자본의 편에 한 발을 깊숙이 들여놓은 셈이다. 이번 합의에서 성과급이 자사주로 지급된다는 사실은 그 결합을 한층 또렷이 드러낸다. 노동자가 주가 움직임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초격차는 소득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노사 합의에 포함된 연 1.5%, 최대 5억 원의 사내 주택대출 제도는 정부의 대출 규제마저 우회하며 박스 안 정규직 노동자에게 자산 형성의 기회까지 제공한다. 이처럼 삼성 정규직 노동자는 다른 노동자와 같은 범주에 묶이긴 하나, 분배 구조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현격히 다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익숙한 언어만으로는 이러한 분절을 온전히 묘사할 수 없다. 영업이익 지분의 제도화를 약속받은 이번 싸움을 마치 자본주의의 성역에 큰 균열을 낸 것처럼 치켜세우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자본의 논리에 맞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논리 안으로 박스 안 정점에 있는 노동자들을 더 깊숙이 밀어 넣은 것이다.

이제 박스 바깥을 들여다보자. 앞의 세 청구권자는 모두 박스 안에서 영업이익의 분배를 놓고 줄다리기를 한다. 박스 바깥에도 그 이익의 원천이 있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는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추출의 사슬에 묶인 모든 주체와 영역에도 일정한 청구권이 존재한다. 다만 이 청구권자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여러 사슬의 단계를 거치는 과정 탓에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어렴풋하게만 인식할 뿐이다. 시민은 자신이 낸 세금이 얼마나 어떻게 반도체 산업으로 흘러갔고, 그것이 어떻게 막대한 영업이익의 기반이 되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무지의 탓은 아니다. 추출의 사슬 자체가 본래 투명하게 포착되지 않는다. 외부 요인은 종종 ‘시장 상황의 변화’라는 추상적 언어 뒤에 가려진다. 한 농민단체가 직접 송전탑과 용수의 부담을 짚으며 무역이득공유제와 초과이윤세를 요구한 것은, 박스 밖 청구권자가 스스로 목소리를 높인 드문 사례일 뿐이다. 대다수는 박스 안의 이들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할 뿐, 자신의 몫을 당당히 말하지 못한다.

여기서 박스 안과 박스 밖의 결정적 차이가 드러난다. 박스 안의 세 주체는 저마다 자기 몫의 크기를 따진다. 이들의 요구는 영업이익의 10.5%, 출자한 자본에 대한 수익, 성과에 연동된 보수처럼, 자신에게 떨어질 수 있는 지분을 극대화해 떼어내려는 분할 청구다. 그러나 박스 밖의 주체는 그런 방식으로 제 몫을 주장하지 않으며, 주장할 수도 없다. 추출의 사슬에 묶인 모든 주체에게 ‘당신 몫은 구체적으로 얼마’라며 잘라 나눠줄 방법은 없다. 이들의 청구는 자신에게 떨어질 지분을 확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 이익이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낸 것인 만큼 그 과실이 사회 전체로 골고루 흘러가게 하라는 것이다. 청구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 박스 밖 청구권의 실현은 박스 안과 같은 개별적 분배가 아니라 사회적 공유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잉여이익의 분배는 박스 안의 샅바 싸움으로만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박스 밖에 존재하는 청구권과 그 주체를 어떻게 가시화하고, 그 이익을 사회 전체로 되돌리는 새로운 제도를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이다.

4. 사회적 환수,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법인세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법인세는 가장 오래된 사회적 환수 장치의 하나다. 법인세 제도 그 자체가, 법인격이 만들어낸 이익의 상당 부분에 대해 정치 공동체가 일정한 처분권을 갖는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한국의 법인세는 누진성을 끌어올릴 여지가 충분하다. 2025년 12월 개정으로 2026년부터 법인세 최고세율은 25%(과표 3,000억 원 초과 구간)로 1%포인트 인상되었다. 2023년 감세 조치로 24%까지 낮아졌던 것이 원래 수준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영업이익 300조 원의 기업이나 3,000억 원의 기업이나 같은 최고세율을 부담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광범위한 세액공제 탓에 실효세율은 명목세율보다 한참 낮다. 조 단위를 넘는 영업이익에 대해서는 추가 누진 구간 신설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윤의 규모에 비례하는 누진적이고 보편적인 법인세야말로 사회적 환수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다.

법인세라는 일반적 장치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직접적인 길은 지원과 환수를 처음부터 짝지어 설계하는 것이다. 미국이 그 선례를 보여준다. 2022년 제정된 미국 칩스법은 반도체 기업에 직접 보조금을 주는 근거를 두면서, 동시에 납세자 보호를 위한 이익 환수 근거를 함께 명시했다. 이듬해 확정된 세부지침은 일정 규모 이상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당초 예상을 크게 웃도는 ‘횡재성 초과이익’을 낼 경우, 보조금의 최대 75%를 정부와 공유하도록 의무화했다. 미 상무부는 이를 납세자의 돈을 지키기 위한 약속이라고 설명했다. 지원받은 만큼, 예상을 넘는 횡재는 사회와 나눈다는 호혜의 원리가 법에 새겨진 것이다. 한국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2023년 통과된 이른바 ‘K-칩스법’은 미국의 기업 지원 방식은 충실히 본떴지만, 정작 이익 환수 조항은 통째로 도려냈다. 지원의 사슬만 정교하게 짜고 환수의 고리는 빼버린 이 비대칭이, 천문학적 초과이익 앞에서 그것이 누구의 몫이냐는 혼란을 가중시킨 것이다. 세금으로 기업을 지원했다면 그 결실을 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애초에 마련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그 틀을 다시 설계하자.

금융투자소득세와 누진적 종합과세도 뒤따라야 한다. 영업이익에 대한 법인세 환수만이 조세 수단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보았듯, 같은 슈퍼사이클은 영업이익과 주가 상승을 동시에 만들어내고 주주의 자본이득과 배당 확대를 견인한다. 영업이익과 마찬가지로 주가 상승 역시 단순히 주주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 아니라, 여러 경제주체와 시장 상황이 함께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행 세제에서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이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2020년 신설되어 시행을 앞두고 있던 금융투자소득세는 두 차례 유예 끝에 2024년 12월 폐지되었다. 그 결과 대주주가 아닌 한, 약간의 거래세를 빼면 주식으로 아무리 큰 이득을 실현해도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 폐지의 명분은 자본시장 위축 우려와 이른바 ‘동학개미’ 보호였다. 주가가 부진하던 시기의 논리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 증시는 6월 3일 현재 코스피 8,800선을 넘어섰고, 삼성전자 한 종목의 시가총액만 2,000조 원을 돌파했다. 폐지의 전제는 이미 무너졌지만, 금융투자소득세를 다시 도입하자는 목소리는 사라졌다.

분리과세 형태의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넘어, 궁극적으로는 모든 소득에 대한 누진적 종합과세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 노동소득과 연 2,000만 원 이상의 이자·배당소득은 종합과세로 6%에서 45%의 누진세율이 적용되지만, 금융소득은 연 2,000만 원까지 14%로 분리과세되고, 일반 투자자의 주식 양도차익은 아예 비과세다. 노동으로 1억 원을 벌면 누진세를 내지만, 주식 양도차익으로 1억 원을 벌면 세금이 없다. 최근에는 고배당기업의 배당소득을 종합과세에서 떼어내 더 낮은 세율로 분리과세하는 등, 일부 자본소득에 대해서는 과세를 도리어 가볍게 하는 조치마저 시행되었다. 자본소득에 노동소득보다 가벼운 세 부담을 지우는 이러한 비대칭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금융투자소득세의 부활은 이 비대칭을 바로잡는 출발점에 불과하다. 모든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을 하나로 통합한 누진적 종합과세 체계, 즉 모든 소득은 그 원천과 무관하게 규모에 비례하여 그 일부를 사회로 환원한다는 공정하고 보편적인 원칙이 실현되어야 한다.

세제를 개편하지 않더라도, 막대한 영업이익은 그 자체로 엄청난 초과세수를 불러온다. 그러나 세수가 넉넉하다는 사실이 세제개편 논의를 가로막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세제개편과 함께 던져야 할 또 하나의 질문은, 앞으로 최소 몇 년간 쌓일 거대한 초과세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이다. 이때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자주 언급된다. 1969년 북해 유전 발견 이후 노르웨이는 1980년대 중앙은행 자문위원회의 권고와 정치적 논쟁을 거쳐 1990년 의회에서 국부펀드법을 통과시켰고,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적립을 시작했다. 2024년 말 기준 약 3,500조 원 규모인 이 펀드는 지난 30년간 연평균 6%대의 복리 수익을 거두었다. 핵심 원리는 단순하다. 유한한 자원에서 나온 수익은 미래세대의 것이므로, 원금은 건드리지 않고 투자수익 일부는 사회복지로 환원한다는 것이다. 투자 자체도 윤리 기준에 따라 살상무기, 인권침해 기업, 담배 회사,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 등을 배제한다.

노르웨이 모델과 AI 슈퍼사이클 시대를 맞아 새롭게 제안하는 한국의 국부펀드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원천은 국가가 소유한 자연자원이지만, 한국 국부펀드의 원천은 형식상 민간기업의 초과이윤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 그 초과이윤은 민간기업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노르웨이가 ‘땅속의 석유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선언했다면, 한국에서 그에 해당하는 것은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낸 이 초과이윤이다. 형식만 민간의 것일 뿐, 그 실질적 원천은 노르웨이의 석유만큼이나 사회적이다. 사회적 청구권의 논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도 이른바 신국부펀드, 곧 한국형 국부펀드(K-국부펀드)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20조 원 규모로 첨단 전략 산업에 직접 투자하겠다는 구상이며, 재원으로는 반도체 슈퍼호황의 초과세수와 정부 보유 공기업 지분, 상속세로 납부된 주식 등이 거론된다. 슈퍼사이클의 초과이윤을 사회적 자산으로 적립하려는 방향성 자체는 노르웨이 모델의 원리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현재 알려진 설계에는 결정적 한계가 있다. 알려진 바로는 이 펀드의 운용 전략이 성장형, 즉 첨단 전략 산업의 성장 기업에 장기 투자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미 2025년 12월, 5년간 150조 원 규모로 조성하는 국민성장펀드를 출범시켰고, 이 펀드 역시 AI·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로봇 등 첨단 전략 산업에 투자한다. 두 펀드의 투자 대상과 목적이 사실상 겹치면서 중복 투자로 인한 비효율도 우려된다. 반도체 초과세수를 재원으로 삼은 펀드가 다시 반도체 기업으로 흘러간다면, 그것은 자원의 사회적 환수가 아니라 산업 내 재투자에 가깝다. 신국부펀드가 진정한 의미의 국부펀드가 되려면, 노르웨이가 ‘석유 수익은 미래세대의 것’이라고 선언했듯이, 한국도 먼저 하나의 원칙을 공식화해야 한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초과이윤 중 상당 부분은 사회 전체의 생산물이며, 그것을 현재와 미래세대 모두를 위한 자산으로 적립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이 없다면 신국부펀드는 또 하나의 산업정책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환수의 상상력을 한 단계 더 밀고 나간 제안도 있다. 미국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6월 1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거대 AI 기업의 지분 절반을 공공이 갖도록 하는 ‘AI 국부펀드’ 구상을 내놓았다. 이들 기업의 주식 자체에 일회성으로 50%를 과세해, 시민이 그 기업의 소유 지분을 직접 갖게 하자는 것이다. 그 논거는 앞서 살펴본 것과 비슷하다. AI는 무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인류가 쌓아온 지식과 데이터, 곧 집단 지성 위에 세워진 것인데, 그 대가가 지불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이윤에 대한 과세에 그치지 않고, 지분 자체를 공공이 보유하자는 발상이다. 이러한 공공 지분은 미래의 이윤에 대한 청구권뿐 아니라, 그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데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연다. 앞으로 제안이 좀 더 구체화 되는 과정에서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이런 발상의 의의는 분명하다. 거대한 부를 낳는 이 기술을 과연 누가 소유하고, 누가 그 방향을 결정할 것인가.

지금까지 여러 제도를 살펴보았으나 핵심은 제도의 형식이 아니라 제도 전반을 규정하는 대원칙이다. 누진 법인세 강화든, 환수장치 마련이든, 종합과세 강화든, 국부펀드 설립이든, 그것이 사회적 환수의 장치가 되어 그 과실이 사회 전체로 돌아갈지 아니면 또 하나의 특정 산업 지원책으로 귀결되고 말 것인지가 이러한 원칙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를 가르는 것은 세율이나 펀드 규모 같은 기술적 변수가 아니라, 이 초과이윤을 누구의 것으로 볼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물론 이 물음에 대한 구체적인 답은 사회가 함께 토론하고 합의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이 물음은 분배 테이블에서 멈추지 않는다. 초과이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묻다 보면, 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 막대한 부를 낳는 거대한 전환, 즉 AI라는 새로운 산업 인프라로의 이행 그 자체는 과연 누구의 손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가. 환수와 분배가 결과를 다루는 문제라면, 이것은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에 관한 물음이다. 우리의 논의는 그 지점까지 나아가야 한다.

5. 관건은 과정과 결과의 민주적 통제다

삼성전자가 올해 달성할 것으로 전망하는 최소 300조 원의 거대한 영업이익은 단일한 주체의 노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반사이익, 반세기에 걸친 국가의 산업 지원, 자원과 노동의 글로벌 추출에서부터 시민이 부담해온 전력·용수 인프라와 막대한 세제 혜택, 그리고 일상의 데이터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한 지점으로 응축된 결과다. 응축의 원천은 사업장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 없이 누가 무엇을 얼마만큼 가져갈 것인가를 논하는 것은 한계를 지닌다. 그렇다면 결론의 방향 또한 분명하다. 이 이윤이 모두에게서 다양한 방식으로 추출된 것이라면, 그 분배 또한 모두에게 골고루 닿을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한계를 솔직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추출의 사슬은 글로벌 차원에 걸쳐 있지만, 정작 여기서 말하는 분배 논의는 한국이라는 한 국가의 경계 안에 머물러 있다. 법인세, 금융투자소득세, 국부펀드 모두 한국이라는 정치 공동체를 분배의 단위로 전제한다. 추출은 글로벌하고 분배는 국가적이라는 비대칭이 존재한다. 이는 국제적 차원의 분배 메커니즘이 부재한 현실에서 분배 논의가 일차적으로 국민국가 단위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글로벌 공급망 하층에서 착취적으로 추출된 부분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글로벌 불평등의 해소를 향한, 국가 단위를 넘어선 분배의 상상력 또한 발휘해야 한다. 이러한 장기적 지평을 염두에 두면서, 우선은 국가 단위에서 당장 추진할 수 있는 일부터 실행하자는 것이다.

AI 대전환이 제기하는 문제의 무게는 이미 여러 차원에서 폭넓게 감지되고 있다. 2026년 5월, 교황 레오 14세는 즉위 후 첫 회칙 「마니피카 후마니타스(Magnifica Humanitas) ―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보호에 관하여」를 통해 AI 시대의 경제·기술 권력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내놓았다. 회칙은 가톨릭교회의 가장 권위 있는 가르침의 문헌이다. 교황은 디지털 환경이 국가가 아니라 소수의 경제 권력과 기술 기업의 손에 통제되고 있으며, 권력이 소수에 집중될수록 불투명성과 의존, 배제와 불평등의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AI와 로봇의 시대에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만으로 공공선을 이룰 수 없으므로, 정치가 노동의 존엄과 사회적 포용, 그리고 혁신이 낳은 이익의 공정한 분배를 보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가 사람을 한낱 데이터나 경제적 기능으로 환원하는 시스템을 경계한 대목은, 앞서 크로포드가 AI를 ‘추출의 기술’로 규정하며 짚어낸 문제의식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 회칙의 서명일이 19세기 산업혁명기에 노동권과 자본주의 문제를 다룬 레오 13세의 회칙 「레룸 노바룸」 발표 135주년에 맞춰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AI 대전환을 19세기 산업혁명에 비견되는 격변으로 인식하고, 그 전환이 낳은 과실을 공정하게 분배해야 한다는 요구가 종교적 권위의 언어로까지 표명되었다는 사실은, 이 문제의 중요성을 방증한다.

핵심은 민주적 통제다. AI 산업 자체의 큰 방향에 대한 민주적 통제뿐 아니라, AI 슈퍼사이클이 낳고 있는 거대한 초과이윤의 사용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절실하다. AI 대전환기를 슬기롭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이 전환의 과정과 결과 모두에 개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아직 이를 진지하게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노조나 진보적 정당의 활동가들도 좀처럼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삼성노조를 선뜻 지지하기도, 비판하기도 어려워한다. 조합원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은 노조로서 당연한 일이고,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다면 수억 원의 성과급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한 걸음 더 나아가자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막대한 초과이윤이 오롯이 자신의 노동에서만 나온 것이라고 믿는 노동자는 없을 것이다. 사회적 생산물인 이 막대한 잉여의 처분을, 조합적 차원의 분배를 넘어 사회적 차원의 분배로 확장하자고 말해야 한다. 이것은 정규직 노동자에게 단순히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경영진이 영업이익을 마음대로 처분하도록 놔두라는 것도, 주주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라는 것도 아니다. 현재와 미래의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해 더 큰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자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으로부터 정당한 세금을 걷고, 초과세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사회적 논의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 AI 슈퍼사이클이 당분간 지속되며 경제와 사회의 대전환이 일어난다면, 특정 영역에서 발생한 막대한 잉여이익을 활용해 그 전환의 충격을 흡수할 완충지대를 만들고, 한국 사회의 미래 기반이 될 사회경제·산업 정책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광범위한 사회적 토론과 합의를 거쳐 재원의 마련과 운용, 그리고 지출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토론의 출발점에서부터 모든 사회적 주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 사회경제적 전환의 과정과 결과를 함께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AI 슈퍼사이클 시대에 한국 사회가 마주한 가장 근본적인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