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차문석> 국립통일교육원 교수를 거쳐 지금은 서울사이버대 통일안보북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국제관계학과 북한학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최근 저서> 『북한의 사회변동과 혼종성: 유동하는 경계들』(동국대출판부, 2025)『평양의 도시정치와 공간구조』(통일연구원, 2024) <최근 논문> 한반도 문제와 ‘핀란드화’ 어젠다 분석, 『경계연구』(2024), 미중의 글로벌 전략과 동북아 지정학의 귀환, 『국가전략』(2020)
Ⅰ. 국제질서의 전환 현상들
2026년 현재 국제사회는 기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동요하는 가운데 복합적이고 거시적인 전환이 중첩적으로 진행되는 역사적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오늘날 국제질서의 변화는 단순한 세력 재편이나 지역적 변화 수준을 넘어 국제규범, 경제질서, 기술환경, 안보구조, 국제기구의 역할 등 국제체계 전반을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무엇보다 국제사회는 현재 인류가 단일한 방식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다양한 지구적 위기가 동시적으로 출현하는 ‘복합적 위기 상태(polycrisis)’에 직면해 있다. 여기서 지구적 위기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기후변화, 핵위기,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급속한 기술 변화 등이 촉발하는 전 지구적 수준의 구조적 위험을 의미한다. 일부 학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는 ‘인류세(Anthropocene)의 위기’ 혹은 ‘인류세의 종말’ 등의 담론과 연결하여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동시적·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위기에 대해 국제사회는 충분히 단합된 대응 역량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가 간 협력 역시 제한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위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 능력 부족과 함께 UN의 무기력성이 노출되고 있으며, 기존 국제 제도와 국제 레짐(regime)의 기능적 위기 역시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미국 주도의 규범과 제도에 기반하여 형성되어 온 자유주의적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와 규칙기반 국제질서(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 RBIO)는 점차 구조적 동요를 겪고 있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국제질서는 복합적이고 거시적인 전환과 재구성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2026년 제62회 뮌헨안보회의(Munich Security Conference)의 연례보고서 『해체 중(Under Destruction)』에서도 확인된다. 이 보고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 80여 년간 세계 평화와 번영을 지탱해 온 자유주의 국제규범과 다자주의 협력체제가 단순한 약화를 넘어 기존 패권국과 파괴적 정치세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해체되는 과정에 있다고 진단하였다.
한편, 탈냉전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온 세계화(globalization)의 흐름 역시 점차 종언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기존의 단일한 세계화 질서가 약화되면서 再세계화(reglobalization) 혹은 분절적 세계화(fragmented globalization)라는 새로운 양상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2023년 당시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의 브루킹스연구소 연설에서 ‘워싱턴 컨센서스의 종언’과 ‘새로운 워싱턴 컨센서스’가 제시되면서 상징적으로 선언된 바 있다.
세계화의 쇠퇴는 최근 들어 더욱 뚜렷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중국의 부상과 미중 간 글로벌 차원의 전략 경쟁은 기존 세계화의 동학을 구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미중 경쟁은 군사와 경제 영역을 넘어 가치와 규범이라는 非물질적 차원까지 확대되었으며, 이에 따라 세계화의 정치·경제·기술·사회적 연결성이 전반적으로 제한되는 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동시에 효율성과 시장 중심의 기존 세계화는 점차 안보, 동맹, 공급망 중심의 재편 논리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역사적으로 1930~40년대 민족주의와 파시즘의 부상을 ‘제1반동화와 레트로(retro)화’로 해석하는 시각과 연결된다. 오늘날 2020년대에는 인종적·민족적 타자에 대한 분노와 피해의식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이 등장하는 ‘제2반동화와 레트로화’ 현상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국제기구와 다자주의 질서의 약화 역시 국제질서 전환의 중요한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들어 UN과 국제기구의 기능 약화가 뚜렷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IMF, WB, WTO 등을 서구 중심의 국제기구로 인식하거나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UN안보리는 상임이사국 간 대립 심화로 인해 사실상 기능 정지 상태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2025년 UN총회에서 당시 미국 트럼프가 UN의 역할과 기후 대응 정책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한 발언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동시에 국제질서는 점차 파편화(fragmentation)와 분절화의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국제체제는 점차 단일 질서가 아니라 다수의 권력 중심과 경쟁 질서가 공존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2026년 이후 미국–이란 전쟁, 2022년부터 지속된 우크라이나 전쟁, 강대국 간 경쟁 심화, 가치 대립, 국제 레짐의 기능 약화 등은 세계 각 지역에서 보호주의와 각자도생의 경향을 확대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s)은 재편되고 있으며, 지역 단위의 경제권과 안보권 형성이 강화되고 있다. 그 결과 국가 간 연결성이 약화되는 대신 지역적 헤게모니 국가들이 부상하고 있으며, 국제정치는 다시금 ‘강대국 정치(Great Power Politics)’의 특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와 함께 기술 패권 경쟁 역시 국제질서 재편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AI를 중심으로 한 지능화 시대로 진입하고 있으며, 기술·경제·안보가 결합된 새로운 넥서스(nexus)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AI, 반도체, 양자기술, 우주산업, 해저케이블, 핵심광물 확보 경쟁은 단순한 산업 경쟁을 넘어 국가 전략 인프라 확보 경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실리콘밸리의 주요 기술기업들이 국방 및 전쟁 관련 투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2024년 이후 무기 및 전쟁 목적 활용 제한 조항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일부에서 논의되는 新반동주의와 암흑계몽주의(Dark Enlightenment) 담론과도 연결되어 해석되고 있다.
끝으로 국제사회는 다시금 ‘전쟁의 시대’로 진입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22년 이후 지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2026년 이후 전개된 미국·이스라엘·이란 간 군사충돌은 국제정치가 점차 무력과 억지의 논리에 의해 재구성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미국, 러시아, 중국 등 UN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국제질서 유지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적 현상 변경과 군사적 침략에 적극 나서는 모습은 국제규범의 권위 자체를 약화시키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의 전개 과정과 결과, 국제사회의 대응 방식, 그리고 전쟁 이후 관련 국가들의 미래는 향후 국제질서를 규정하는 핵심적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전쟁 당사국이나 유엔이 아닌 러시아와 미국 중심의 협상 구조가 등장하고 있다. 침략전쟁에 대한 집단안보 원칙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며, 국제규범과 원칙 변경 권한이 사실상 강대국에 집중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UN에 대한 신뢰 저하와 ‘규칙에 기반한(rule-based)’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황혼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국제질서의 윤곽을 보여주는 중요한 징후로 해석될 수 있다.
Ⅱ. 질서 전환 과정의 구조와 윤곽
냉전 종식 이후 약 30년 동안 국제사회는 미국의 압도적 우위에 기반한 단극(unipolar) 질서를 경험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국의 상대적 영향력 변화와 중국의 부상, 국제기구의 약화, 지역 강대국의 등장 등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향후 국제질서가 단극체제로 유지될 것인지, 양극체제로 재편될 것인지, 혹은 새로운 다극체제로 이동할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우선 미국 중심의 단극적 국제질서는 점차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냉전이 종식된 직후인 1990년대 미국은 세계 GDP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이러한 경제력은 미국이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부담하고 국제 공공재(global public goods)를 공급할 수 있는 핵심적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지만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6% 수준으로 변화하였다. 절대적 규모에서는 여전히 압도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으나, 과거와 같은 수준으로 국제 공공재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국제질서를 단독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은 점차 제한되고 있다는 평가가 증가하고 있다. 더욱이 약 30년에 걸친 단극체제 운영 과정에서 미국은 군사적 개입 비용 증가, 산업구조 변화, 정치적 분열, 동맹 관리 비용 확대 등 다양한 부담을 축적하였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미국은 더 이상 전통적 의미의 글로벌 헤게모니 국가라기보다 ‘강대국 가운데 가장 강한 국가(primus inter pares)’로 위치가 조정되고 있다는 해석이 등장하고 있다.
한편 중국의 부상 역시 국제질서 전환의 핵심 변수로 작동하고 있다. 중국은 2010년대 이후 고속성장을 바탕으로 세계경제의 주요 행위자로 부상하였으며, 2026년 현재 세계 GDP의 약 17% 수준을 차지하는 경제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한 중요한 도전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성장만으로 곧바로 새로운 헤게모니 질서가 형성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통적인 헤게모니 국가가 수행해 온 역할은 단순한 경제 규모의 우위를 넘어 국제 공공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동맹과 국제제도를 유지하며, 국제규범을 생산·관리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현재 중국은 경제력 확대와 지정학적 영향력 증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의미의 국제 공공재 공급 역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로 평가된다. 동시에 부동산 문제, 인구구조 변화, 성장률 둔화 등 중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도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중국은 단독 헤게모니 국가라기보다는 ‘여러 글로벌 강대국 중 하나(one of the great global powers)’로 이해하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상대적 조정과 중국의 제한적 부상이라는 구조적 조건 속에서 최근 국제질서는 새로운 유형의 권력정치로 이동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미국이 중심이 되어 유지해 온 국제질서의 작동력이 약화되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UN을 비롯하여 전 지구적 보편 기능을 담당해 온 국제제도와 국제기구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은 결과적으로 ‘강대국 정치(Great Power Politics)’가 재등장하는 구조적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오늘날 국제정치는 보편적 규범과 제도에 의해 조정되기보다 주요 강대국들의 협상과 경쟁에 의해 운영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를 중심으로 한 대략적인 ‘4각 구도’가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동시에 지역 차원에서는 국가 블록화 현상이 강화되고 있으며, 독일(서유럽), 브라질(남미), 이란(중동), 인도(남아시아)와 같은 주요 국가들이 각자의 역내에서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미국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는 2025년 1월 연설에서 “세계에 단극 강대국만 존재했던 것은 오히려 예외적 상황이었으며, 결국에는 여러 지역에 여러 강대국이 존재하는 다극체제로 돌아갈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이러한 인식은 최근 국제질서 변화에 대한 미국 내부의 전략적 재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현재의 강대국 정치는 아직 완성된 질서라기보다 과도기적 성격을 갖는다. 오늘날 국제정치에서는 국제연합과 국제법이 제공하는 보편적 규범과 규칙보다 강대국들의 실제 권력(power)이 질서를 결정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이는 국제정치가 다시 힘의 논리에 의해 운영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일부 학자들로 하여금 현재의 국제질서를 역사적 유추의 관점에서 해석하게 만들고 있다. 즉 오늘날의 국제질서를 19세기 유럽 협조체제(Concert of Europe)나 1930년대 전간기(interwar period)의 강대국 정치 구조와 비교하는 시각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역사적 상황은 다르지만, 보편주의 질서의 약화와 지역 권력 중심의 재편이라는 점에서는 일정한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그러나 강대국 정치의 복귀가 반드시 안정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상원의원 클로드 말뤼레(Claude Malhuret)는 2025년 프랑스 상원 연설에서 강대국 간 타협이 영향권 분할로 이어질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그는 미국이 그린란드·파나마·캐나다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발트 지역·동유럽을, 중국이 대만과 남중국해를 각각 영향권으로 인정받는 방식의 강대국 타협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현재 국제질서의 전환은 단순히 단극에서 양극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라기보다, 헤게모니의 상대적 약화와 다수 강대국의 경쟁, 지역화, 국제규범의 재조정이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적 구조 변동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의 국제질서는 아직 완성된 질서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향해 이동하는 과도기적 공간으로 평가할 수 있다.
Ⅲ. 미국·중국과 국제질서 전환
1. 미국의 글로벌 전략과 국제질서
◘ 미국의 패권에 대한 인식
최근 미국의 글로벌 전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 스스로 현재 국제질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정부의 전략적 사고는 기존의 미국 중심 단극질서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탈냉전 이후 약 30년 동안 미국은 국제정치·경제·안보 전 영역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극 패권국으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정책 엘리트 내부에서는 기존의 단극적 국제질서가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미국 역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세계 전체를 관리하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미국은 자신을 전통적 의미의 헤게모니 국가라기보다 ‘강대국 가운데 첫 번째(primus inter pares)’로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미국의 상대적 쇠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극화된 국제환경 속에서도 최상위 강대국의 위치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적 조정에 가깝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미국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는 2025년 1월 연설에서 “다극화는 이미 현실이며, 워싱턴의 목표는 쇠퇴하는 패권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극 질서 속에서 여러 강대국 중 첫 번째가 되는 것”이라는 취지의 입장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발언은 오늘날 미국 전략의 핵심이 세계 지배의 지속이 아니라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우위를 유지하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강대국 관계의 재설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미중 경쟁에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 이외의 주요 강대국들과의 관계 조정을 시도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이나 법치보다는 협상과 거래를 통해 국제 현안을 해결하려는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접근은 불필요한 지역 분쟁 개입을 최소화하고 미국의 전략 자원을 중국 견제에 집중하려는 목적과 연결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 과정에서도 미국과 러시아 중심의 협상 구조가 부각되었고, 일부에서는 이를 ‘제2의 얄타회담’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또한 일부 분석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역(逆) 키신저 전략’으로 해석한다. 이는 1970년대 키신저가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소련을 견제했던 것과 달리, 오늘날 미국이 러시아와의 관계 조정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구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전략은 미국·중국·러시아와 같은 주요 강대국들이 일정한 세력권을 형성하고, 상호 협상과 지정학적 조정을 통해 안정적 세력균형체제를 구축하려는 ‘강대국 정치(concert of power)’의 성격을 갖는다. 즉 미국은 스스로의 최강국 지위(primacy)를 유지하면서 다른 강대국들의 부상을 관리하려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
◘ 미국 우선주의와 MAGA 2
이러한 국제질서 인식 변화는 트럼프 정부의 대표적 전략 구호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2로 구체화되고 있다. MAGA 2 전략은 단순한 보호무역이나 국내경제 회복 정책이 아니라, 포퓰리즘에 기반한 공격적 팽창주의와 새로운 형태의 고립주의가 결합된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이를 전통적 먼로주의(Monroe Doctrine)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MAGA 전략의 핵심은 영토 확장, 전략 공간 확보, 영향권 관리와 같은 지정학적 요소를 활용하여 미국의 상대적 국력을 회복하고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여기에는 단순히 국경 방어를 넘어 해외 지정학적 위협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 공간 확대와 역내 통제 강화 논리가 포함된다. 정책적으로 보면 이러한 접근은 세 가지 원칙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의 직접적 이익과 관련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무관심(indifference)을 유지한다. 둘째, 미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사안에는 강압(coercion)을 적극 활용한다. 셋째, 미국의 이익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영역에는 거래(transaction)를 통해 접근한다.
외교안보 전략 차원에서는 이른바 ‘개입 자제론(restrainers)’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있다. 개입 자제론자들은 미국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 중심 외교에 지나치게 몰입하면서 세계 곳곳에 과잉개입(overreach)하였고, 그 결과 국력을 소진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일본, 한국, 유럽 등 동맹국들이 경제 발전과 복지국가 구축에 집중하는 동안 미국이 과도한 안보 비용을 부담해 왔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의 제조업과 산업 기반은 약화되고 중국이 최대 전략적 경쟁자로 부상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이들은 미국이 ‘끝없는 전쟁(endless wars)’의 구조에서 벗어나 국익 중심의 현실주의 외교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유럽과 중동이 더 이상 미국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아니며, 러시아와 이란에 대한 억제 역시 유럽과 이스라엘 등 지역 동맹국들이 보다 큰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본다.
한편 군사력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은 군사 개입은 줄이되 압도적 군사력을 유지하려는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트럼프 정부는 이른바 ‘꿈의 군대(Dream Military)’ 구상을 제시하며 2027년 국방예산 확대와 함께 그린란드·북극권·북극항로 및 대서양–태평양 연결 해역에 대한 전략적 통제 역량 강화를 강조하였다.
◘ 대중국 정책
이러한 전략 변화의 궁극적 목표는 중국에 대한 대응으로 수렴된다. 실제로 트럼프 2기 정부의 대외정책에서 중국 문제는 가장 핵심적인 전략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경제적·군사적으로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하며, 미중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종합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바이든 정부 시기의 대중국 견제 기조를 계승하면서도 보다 직접적이고 강경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경제·무역·기술 경쟁의 최종 목표를 중국의 전략적 고립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공급망 재편과 첨단기술 통제를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단순한 대결 전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강경 억제와 협상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 첫째는 디커플링(decoupling) 전략이다. 미국은 관세 정책, 첨단산업 공급망 배제, 기술 통제 등을 통해 중국과의 전략적 분리를 추진하고 있으며, 동시에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 원칙 아래 군사 억제력을 강화하고 있다. 둘째는 거래주의(transactionalism) 전략이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과의 경쟁을 강조하면서도 직접적 충돌은 회피하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중 관계를 협상 가능한 관계로 규정하고 상호 타협과 거래 가능성을 열어두는 접근 역시 병행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최근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유연한 현실주의(flexible realism)’ 또는 ‘실용적 현실주의’로 설명될 수 있다(2025 NSS). 이러한 접근은 과거와 같은 체제 전환이나 상대국의 완전한 굴복을 목표로 하기보다, 미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경쟁과 공존을 동시에 관리하려는 전략적 사고를 의미한다. 특히 최근 미국의 국가안보 전략과 국방 전략(2026 NDS)에서는 중국을 향해 ‘괜찮은 평화(Decent Peace)’라는 개념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이는 중국의 체제 붕괴나 완전한 패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우위를 유지하면서도 관리 가능한 경쟁 질서를 구축하려는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중국의 글로벌 전략과 국제질서
◘ 중국의 미래 비전: 중국몽(中國夢)
현재 중국의 대외전략과 국제질서 구상은 단순한 경제성장이나 군사력 증강 차원을 넘어 ‘중국몽(中國夢)’이라는 장기 국가 프로젝트에 기반하여 전개되고 있다. 중국몽은 시진핑 시대 이후 중국 국가 발전의 핵심 담론으로 자리 잡았으며, 중국식 현대화를 통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단순한 국가 발전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적 위상 회복과 국제질서 재구성이라는 전략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중국은 우선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과 ‘사회주의 문명국가’ 건설을 중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中國化)와 시대화(時代化)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중국 특색 사회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있다. 동시에 중국식 현대화를 통해 중화민족의 부흥을 실현하고, 산업 경쟁력과 핵심기술의 자주화를 달성하며, 중국식 제도 모델과 국가 핵심이익(核心利益)을 보호하는 것을 전략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중국은 2049년, 즉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을 기점으로 ‘전면적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완성한다는 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구상은 단순한 경제 강국 건설을 넘어 경제·군사·외교·과학기술 등 국가 역량 전반에서 미국을 넘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로 도약하려는 국가 발전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중국의 국제질서 인식
현재 중국은 국제질서가 이미 본격적인 다극화(multilateral multipolarization)의 단계로 진입하였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사회는 더 이상 미국과 서구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질서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새로운 권력 분산과 구조 재편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변화를 단순한 환경 변화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국제질서 재편을 주도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 즉 적기(適期)로 해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시진핑은 2024년 양회(兩會) 관련 발언에서 중국이 러시아뿐 아니라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과 협력하여 보다 평등하고 질서 있는(平等有序) 다극화 국제질서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제시하였다.
중국의 관점에서 다극화는 단순히 미국의 상대적 쇠퇴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 서구 중심 질서가 해체되고 다양한 문명과 발전 모델이 공존하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 중국의 대미국 전략 기조
중국의 대미 전략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적 국제질서 구축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구축해 온 단극적 국제질서를 지속 가능한 질서로 보지 않으며, 미국 중심의 질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다극질서를 제안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세력 경쟁이 아니라 국제규범과 제도 운영 원리에 대한 경쟁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미국과의 직접 충돌보다는 공존과 상호 존중을 강조하고 있으나, 동시에 국제질서 운영의 중심축을 미국에서 보다 분산된 구조로 이동시키려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202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서도 상징적으로 나타났다. 당시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을 포함하여 다수의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함께 국제협력과 ‘인류운명공동체’ 구축을 강조하면서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 비전을 제시하였다.
◘ 국제질서 재편과 제도권 확장 전략
최근 중국의 전략은 단순한 반미 담론이나 다극화 주장에 머물지 않고 보다 구체적인 국제질서 설계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은 글로벌 발전구상(GDI), 글로벌 안보구상(GSI), 글로벌 문명구상(GCI)에 이어 2025년 글로벌 거버넌스 구상(Global Governance Initiative)을 추가적으로 제시(4대 전지구全地球 발기發起)하였다. 이러한 구상들은 각각 발전·안보·문명·거버넌스를 연결하여 중국을 단순한 도전자(challenger)가 아니라 ‘대안적 국제질서의 설계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의 국제질서 재편 전략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다극화 질서를 지향하면서 미국 중심의 단극질서를 견제하는 것이다. 둘째, 러시아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연대하여 새로운 다극 세계의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셋째, 중국식 현대화 모델과 중국식 거버넌스를 국제사회에 확산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신형국제관계(新型國際關係)’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상호 존중, 공동 이익, 공생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일부 연구에서는 이러한 담론이 실질적으로는 중국 중심의 위계적 질서를 정당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국제기구 내부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UN, WHO, ITU 등 국제기구에서 주요 직위를 확보하고 규범 형성 과정에 적극 참여하면서 제도 내부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동시에 BRICS, SCO, AIIB와 같은 대안적 국제협력체를 강화하면서 기존 서구 중심 제도 밖에서도 병렬적 제도 공간을 확장하고 있다.
외교 전략 측면에서는 미국의 동맹국과도 경제·외교 협력을 확대하는 전략적 파트너십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며, 주권 존중과 내정 불간섭 원칙을 강조함으로써 인권과 민주주의를 둘러싼 서구의 비판을 상대화하고 권위주의 국가들과의 협력 기반을 넓히고 있다.
◘ 주변국 및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접근 강화
중국은 국제질서 전환 과정에서 주변국과 글로벌 사우스를 핵심 전략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선 주변국 전략에서는 ‘주변국 운명공동체’를 구축하는 방향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주변 국가들과 경제적 융합과 상호 연결성을 확대하고 산업 및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특히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핵심 플랫폼으로 활용하여 아시아 지역의 경제·안보 구조를 연결하고 장기적으로는 중국 중심의 ‘아시아 안보 모델’을 형성하려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를 국제질서 재편의 핵심 연합 세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은 인도, 브라질, 중간지대의 다양한 비서구 발전도상국들과의 협력을 확대하면서 미국과 서구가 주도해 온 글로벌 거버넌스를 개혁하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적극적인 연합 구축(coalition building)을 추진하고 있으며, 중국과 글로벌 사우스를 연결하는 핵심 담론으로 글로벌 발전구상(GDI)과 글로벌 안보구상(GSI)을 활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글로벌 전략은 단순한 국가 성장 전략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구조 자체를 재편하고 새로운 제도와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장기적 전략 프로젝트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Ⅳ. ‘경쟁적 다중질서(Competitive Multiplex Order)’의 형성
앞에서 살펴본 미국과 중국의 전략 변화는 향후 국제질서가 어떠한 구조로 재편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전통적으로 국제정치학에서는 국제질서의 유형을 단극체제(unipolarity), 양극체제(bipolarity), 다극체제(multipolarity)로 구분해 왔다. 그러나 최근 국제질서의 변화는 이러한 기존의 세력분포 중심 분석만으로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나타나는 변화는 단순히 미국과 중국이 양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양극체제로의 이동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질서와 네트워크가 동시에 형성되고 경쟁하는 보다 복합적인 구조로 전개되고 있다.
향후 국제질서는 미국 중심의 동맹·기술·금융 네트워크와 중국 중심의 생산·인프라·글로벌 사우스 네트워크가 서로 중첩되면서 경쟁하는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국가들은 하나의 중심 질서에 일방적으로 편입되기보다, 서로 다른 질서와 네트워크에 부분적으로 연결되는 복합적 구조 속에서 움직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미국의 전략은 기존의 자유주의 패권국(liberal hegemon) 모델에서 점차 변화하고 있다. 냉전 이후 미국은 자유주의 규범, 개방경제, 국제기구를 통해 보편적 국제질서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은 이러한 보편주의적 역할을 축소하고 보다 선택적인 방식으로 국제질서를 관리하려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즉 미국은 앞으로 핵심 지역, 핵심 기술, 핵심 동맹에 전략적 자원을 집중하면서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는 ‘선별적 개입(selective engagement)’과 ‘거래적 동맹 관리(transactional alliance management)’를 수행하는 최상위 강대국의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미국이 모든 지역과 사안에 동일한 수준으로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국익과 전략적 중요도에 따라 개입 수준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중국의 전략은 미국 중심 질서를 전면적으로 해체하거나 즉각적으로 대체하려는 접근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인다. 중국은 기존 국제제도 내부에서는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동시에 기존 질서 외부에서 병렬적인 제도 공간을 구축하는 이중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중국은 UN과 기존 국제기구 내에서 규범 형성과 조직 운영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편, 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일대일로(一帶一路), 글로벌 발전구상(GDI), 글로벌 안보구상(GSI), 글로벌 거버넌스 구상(GGI) 등을 통해 새로운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종합하면 향후 국제질서는 미국의 선택적 패권 유지, 중국의 대안질서 구축, 그리고 러시아·인도·유럽·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전략적 자율성 확대가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국제질서의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경쟁적 다중질서(competitive multiplex order)’라는 개념이 적합할 것이다. ‘경쟁적 다중질서’란 하나의 보편적 국제질서가 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가 아니라, 복수의 질서가 서로 중첩되고 경쟁하면서 동시에 공존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경쟁적 다중질서가 단순한 다극체제와 동일한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통적인 다극체제는 여러 강대국이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주로 국가 간 힘(power)의 분포에 초점을 둔다. 반면 경쟁적 다중질서는 단순한 세력 경쟁을 넘어 서로 다른 규범, 기술 표준, 공급망, 금융 체계, 안보 네트워크, 국제제도가 동시에 존재하고 경쟁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다극체제가 ‘누가 더 강한가’의 문제라면, 경쟁적 다중질서는 ‘누가 어떤 질서를 설계하고 확산시키는가’의 문제에 가깝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국제질서는 미국 패권의 단순한 쇠퇴도 아니며, 중국 패권의 단순한 부상도 아니다. 오히려 여러 질서와 규범, 공급망과 기술체계가 경쟁하면서 동시에 중첩되는 새로운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국가들의 전략 역시 변화하고 있다. 과거와 같이 하나의 진영에 완전히 편입되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들은 여러 질서 사이를 조정하고 선택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적 행위자로 변화하고 있다.
결국 앞으로 국제정치의 핵심 질문은 ‘어느 국가가 패권을 차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질서와 네트워크가 더 많은 국가들의 선택을 받을 것인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점에서 경쟁적 다중질서는 국제질서 전환기를 설명하는 중요한 분석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