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위 쿠데타의 평행이론

<글쓴이 임성욱> 역사를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 한국사와 세계사의 연결에 관심이 많음.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연구』(신서원, 2019)를 집필함.

1946년 정판사 ‘위폐’ 사건 vs
2024년 비상계엄

78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친위 쿠데타

2024년 12월 3일에 벌어진 비상계엄 선포 사태는 국가 권력이 무력으로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연장하려 한 명백한 친위 쿠데타이자 내란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는 한국 현대사에서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승만의 부산정치파동, 박정희의 유신 쿠데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80년 전인 1946년 5월, 해방의 환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미 이와 놀라울 정도로 닮은 친위 쿠데타가 발발했었다. 바로 미군정과 부활한 친일 경찰, 그리고 극우 세력이 결탁하여 조작한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이다.

1946년 미군정·우익 세력이 자행한 정판사 ‘위폐’ 사건 조작과 그로부터 78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2024년 윤석열 정권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는 그 시작부터 끝까지 완벽한 평행이론을 이루고 있다. 권력 유지에 눈이 먼 쿠데타 세력들이 어떻게 진실을 조작하고 헌정 질서를 유린했는지, 8대 평행이론을 통해 두 사건을 낱낱이 비교해 보자.

[평행이론 1] 벼랑 끝에 몰린 권력자들

2024년의 윤석열 정권 : 국정 지지율이 최저치로 끝없이 추락하고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하며 국회가 정권의 독주에 대한 견제를 본격화하자, 윤석열 정권은 이성적인 타협 대신 헌정 질서를 뒤엎는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인 내란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런데 이는 위기에 몰려 갑자기 궁리해 낸 우발적 범죄가 아니었다. 윤석열은 집권 초기, 심지어 집권하기 전부터 이미 쿠데타에 대한 생각을 품고 있었으며, 위기의 순간이 오자 오랫동안 내재해 있던 독재적 야욕을 실행에 옮긴 것에 불과했다.

1946년의 미군정 : 사령관 존 리드 하지 역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일제의 통화 남발 정책을 인정 및 승계함으로써 남한은 초인플레이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미곡 자유화 조치 등 미군정의 섣부른 경제 정책은 모리배의 매점매석과 쌀값 폭등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식량 부족 사태가 발발하고 시위가 급증하는 등 미군정에 대한 민중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개최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에서도 미국은 소련에 밀려 수세에 몰려 있었다. 남북한을 통틀어 대중의 압도적 지지는 미군정이 눈엣가시로 여기던 좌익과 제1야당 조선공산당을 향하고 있었고, 반탁을 주장하며 미소공동위원회 참가를 거부한 우익 세력의 지지기반은 매우 취약했다.

사실 미군정은 출범 초부터 남한 내 좌익 세력을 약화시킬 의도를 가지고 서서히 은밀한 작업을 진행해 오고 있었다. 그러다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전후로 정권의 위기가 심화되자, 자신들이 구상하던 친미 우익 중심의 통치 기반을 수호하기 위해 한층 더 노골적이고 새로운 방식의 좌익 탄압책을 전격적으로 꺼내들게 된다. 그것은 바로 ‘좌익 분열’과 ‘조선공산당 고립화’라는 신(新) 대좌익전술이다.

[평행이론 2] 쿠데타의 트리거

2024년의 윤석열 정권 : 지지율이 추락해 가는 위기 속에서 정권의 존립 자체를 뒤흔든 결정타인 ‘김건희 게이트’와 ‘명태균 게이트’가 연일 터져 나오자, 윤석열 정권은 자신의 치명적인 치부를 덮고 정국을 반전시키기 위해 비상계엄이라는 파멸적인 선택을 했다.

1946년의 미군정 : 민중의 분노가 폭발 직전인 위기 속에서 미군정 체제의 존립 자체를 뒤흔든 결정타인 ‘우익 단체 연루 위폐 범죄’가 터져 나오자, 미군정 역시 자신들의 치명적인 치부를 덮고 정국을 반전시키기 위해 거대한 조작극이라는 파멸적인 선택을 내렸다.

사태의 시작은 5월 초, 경찰이 뚝섬에서 대규모 위조지폐 일당을 전격 검거하면서부터였다. 그런데 이 범죄에 장소를 제공한 핵심 피의자 이원재가 다름 아닌 이승만과 김구가 이끄는 대표적 우익 단체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뚝섬지부의 조직부장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미군정이 새로운 통치 파트너로 삼으려던 핵심 우익 세력이 최악의 경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몹시 우려한 미군정은, 정권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이 거대한 범죄를 철저히 은폐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 치명적인 범죄의 책임을 제1야당에게 뒤집어씌우는 거대한 조작극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평행이론 3] 조작된 명분과 가짜 뉴스

2024년의 윤석열 정권 : 총칼을 동원한 내란을 정당화하기 위해, 윤석열 정권은 야당의 ‘입법 독재’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정선거’ 의혹 등을 구실로 내세웠다. 야당이 국가 체제를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선거 시스템을 붕괴시켰다는 가짜 뉴스와 억지 명분을 씌워, 자신들의 불법적인 권력 폭거를 가리려 한 것이다.

1946년의 미군정 : 우익의 치명적인 범죄를 덮기로 결심한 미군정 역시, 국민의 분노를 돌리기 위해 ‘체제 전복’과 ‘시스템 붕괴’라는 허구의 프레임을 짜냈다. 1946년 5월 15일, 미군정 공보부는 “조선공산당 간부와 정판사 직원들이 공모하여 막대한 위조지폐를 찍어내어 남조선 일대의 경제를 교란시켰다”고 공식 발표했다.

초기 300만 원으로 발표되었던 위조 금액은 어떠한 뚜렷한 증거도 없이 결국 1,200만 원(현재 가치 약 200억 원)으로 뻥튀겨졌다. 자신들의 경제 정책 실패로 일어난 민생 파탄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제1야당이 위폐로 국가 경제 시스템을 파괴했다는 충격적인 가짜 뉴스를 유포하며 대중을 기만한 것이다.

[평행이론 4] 야당 파괴와 정적 숙청

2024년의 윤석열 정권 : 허구의 명분이 고안되자, 윤석열 정권은 제1야당을 헌정 질서를 마비시키는 ‘종북 반국가세력’이자 ‘내란세력’으로 규정하는 파멸적인 프레임을 씌웠다. 이 가짜 뉴스 군사 작전을 무기 삼아, 정권은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기 위해 거대 야당과 국회를 향해 친위 쿠데타의 칼날을 정면으로 겨눴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계엄군은 무장 대간첩 작전 부대까지 동원해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을 무력으로 점거하고, 헌법 기관인 국회를 해산하여 국민 주권의 침탈을 획책했다. 정당한 민주적 통제를 가하는 야당의 존재 자체를 폭력을 동원하여 압살하려는 것이었다. 동시에 계엄사령부는 포고령을 통해 야당 정치인들의 체포·수거 지시를 내리며 제1야당의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핵심 정적들의 제거를 시도했다.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야당 말살을 목적으로 한 잔혹한 정치적 학살이자 폭거였다.

1946년의 미군정 : ‘정판사 위폐 사건’이라는 가짜 뉴스로 명분을 쥔 미군정 역시, 제1야당이 위조지폐를 찍어 남조선 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뜨린 ‘국가 경제 교란 세력’이라는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웠다. 미군정은 조작된 프레임을 빌미로 곧바로 제1야당 조선공산당의 당사 건물을 폐쇄하고 인쇄소 시설을 압수하며 정당의 물적 기반을 무참히 짓밟았다.

탄압은 점진적이고 교묘하게 확대되었다. 5월의 프레임 조작에 맞서 7월 말 조선공산당이 강경한 반미 공세(신전술)로 전환하고, 8월 좌익 3당 합당을 거쳐 9월 총파업으로 거세게 저항하자, 미군정은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미군정은 당수 박헌영을 비롯한 당 지도부에 대대적인 체포령을 내리며, 공식적인 불법화 선언 없이도 제1야당의 정당 기능을 사실상 완벽하게 마비·해체시켰다. 11월에는 핵심 정적 이관술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여 정치적으로 파멸시켰다. 이는 합법적 공간에서 자신들을 위협하던 거대 야당의 숨통을 폭력과 사법 공작으로 끊어버린 잔혹한 야당 말살 공작이었다.

[평행이론 5] 언론에 대한 입틀막

2024년의 윤석열 정권 : 불법적인 친위 쿠데타와 정당 파괴의 실상을 국민에게 숨기기 위해, 윤석열 정권은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야만적인 폭거를 감행했다.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발표된 포고령을 통해 모든 언론과 출판의 사전 검열을 선언했으며, 무장한 계엄군을 지상파 방송국과 주요 언론사에 난입시켜 보도 기능을 강제로 통제하려 획책했다. 정권의 치명적인 치부를 가리고 내란의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민주주의의 보루인 언론의 자유를 무력으로 짓밟은 것이다.

1946년의 미군정 : 조작된 위폐 사건의 실상을 폭로하고 자신들의 정책 실정을 비판하는 여론을 지우기 위해, 미군정 역시 사법 수사를 빙자한 잔혹한 언론 말살 작전에 돌입했다. 미군정은 정판사 사건을 공식 발표함과 동시에, 사건의 모순을 지적하며 대안적 목소리를 내던 제1야당의 기관지 《해방일보》를 전격적으로 강제 폐간시키고 인쇄소 시설을 압수했다. 정권은 사법적 명분을 방패 삼아 언론의 물적 기반과 경영진을 정밀 타격했다. 신문이 인쇄되던 정판사 인쇄소 시설 자체를 전면 압수·폐쇄했으며, 정판사 사장 박낙종을 위폐 사건의 피의자로 전격 체포했다. 이어 해방일보사 사장 권오직에게도 체포령을 내려 도피(이후 월북)하게 만드는 등 언론의 손발을 완전히 잘라냈다.

탄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비판 여론 전체를 압살하는 전면적 통제로 확대되었다. 9월 총파업이 발발하며 민심이 격렬하게 저항하자, 미군정은 박헌영 등 당 지도부 체포령을 내림과 동시에 정권에 비판적이던 좌익 계열 3대 신문(조선인민보·현대일보·중앙신문)에 대해 전격적인 무기한 정간 조치를 단행했다. 오직 자신들의 관제 프로파간다와 조작된 프레임만을 세상에 유포하기 위해, 정권에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언론 생태계를 단계적으로 주도면밀하게 초토화한 언론 장악 공작이었다.

[평행이론 6] 권력의 충견들

2024년의 윤석열 정권 : 친위 쿠데타라는 미친 질주를 감행하기 위해, 윤석열 정권은 공직자로서의 사명과 양심을 내팽개친 채 오직 독재자의 안위만을 위해 움직이는 ‘권력의 충견’들을 동원했다. 그 핵심 공범은 우두머리 윤석열과 직접 소통하며 총칼을 휘두른 군부 수뇌부였다. 국방부 장관 김용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박안수, 전 정보사령관 노상원, 정보사령관 문상호, 방첩사령관 여인형, 수도방위사령관 이진우, 국가정보원장 조태용, 경찰청장 조지호, 서울경찰청장 김봉식 등 군·경 및 정보기관의 수뇌부들은 내란의 주동 세력이 되어 주권자인 시민과 국회를 무력으로 짓밟았다.

여기에 국무총리 한덕수, 경제부총리 최상목, 행안부 장관 이상민 등 최고위급 관료들이 일사불란하게 행정적 부역을 감행하며 내란의 발판을 깔아주었다. 제도를 수호해야 할 법적 책임자들이 권력자의 사냥개가 되어 민주주의를 침탈한, 헌정사 최악의 집단적 폭거였다.

1946년의 미군정 : 조작된 프레임을 실전용 흉기로 만들기 위해 미군정 역시 체제 수호의 탈을 쓴 악질적인 사냥개들을 전면에 세웠다. 미군정장관 러치와 미국인 경무부장 매글린의 묵인과 기획 아래, 친위 쿠데타의 최선봉에서 실무를 총지휘한 행동대장들은 다름 아닌 미군정의 CIC(군 정보기관), 헌병대, 그리고 미군정의 비호 속에 화려하게 부활한 ‘친일 경찰’들이었다.

한국인 경무부장 조병옥과 제1관구경찰청장 장택상의 지휘하에,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본정경찰서장 이구범, 본정경찰서 수사주임 최난수 등의 노련한 친일 경찰들이 수사를 주도했으며, 악명 높은 노덕술까지 대책 회의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위폐 인쇄에 대한 물적 증거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자, 자신들의 주특기인 잔혹한 물고문과 실신할 때까지 이어지는 구타를 자행하며 사건을 억지로 꿰맞췄다. 역사적 단죄를 받았어야 할 반민족행위자들이 도리어 권력의 충견이 되어 무고한 독립운동가와 야당 인사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었다.

[평행이론 7] 법조 카르텔의 야합

2024년의 윤석열 정권 : 친위 쿠데타와 정적 숙청이라는 초법적 범죄 행위에 법의 방패를 쥐여주기 위해, 윤석열 정권은 최고 권력과 결탁한 ‘법조 카르텔’을 적극적으로 구동했다. 법무부 장관 박성재, 대법원장 조희대, 검찰총장 심우정 등으로 대변되는 사법 권력 수뇌부는 내란 세력의 명백한 범죄 행위를 묵인하고 비호하는 권력의 충견 노릇을 수행했다.

이러한 야합의 결정판은 유력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사법 살인 시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수만 쪽에 달하는 방대한 재판 기록을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않은 채, 사건 접수 후 불과 한 달여 만에 기존 판례를 뒤집고 유죄 취지의 초고속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하며 대선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 사법부의 중립성을 내팽개친 이 졸속 판결은 내란 재판 1심에서 범죄 우두머리 윤석열을 불법 석방하고 온갖 편의를 봐준 판사 지귀연의 행태와 궤를 같이한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법치 시스템이 독재자의 정적 사냥 도구로 전락한 헌정사의 거대한 오점이다.

1946년의 미군정 : 가짜 뉴스로 시작된 사법 공작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미군정 역시 법의 이름을 빌린 철저한 암흑 재판을 기획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재판장 양원일, 검사 조재천은 일제강점기 판검사 출신들로 구성된 친일·우익 법조 카르텔에 소속된 자들이었다. 이들은 물적 증거가 단 한 장도 없는 상황에서 경찰의 가혹한 고문으로 짜낸 피의자들의 허위 자백만을 유죄의 근거로 삼았다.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고문의 상흔을 들이밀며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재판장 양원일은 이를 묵살하고 피고인들을 조롱하며 검사처럼 군림했다. 나아가 사법 당국은 정판사 사장 박낙종의 완벽한 부재증명(알리바이)이 입증되자, 공소장의 위폐 인쇄 공모 시기(10월 하순)를 판결문에서 ’10월 중순’으로 슬그머니 앞당겨 조작하는 초유의 범죄까지 저질렀다.

친일·우익 법조 카르텔은 단지 이 두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제2심으로의 상고를 기각한 재판장 김용무 및 검찰의 총지휘자였던 검사총장 이인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법조계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다는 김병로, 김홍섭도 마찬가지였다. 김병로 당시 사법부장(현 법무부장관)도 정판사 ‘위폐’ 사건과 관련하여 미군정의 방침을 따랐고, 김홍섭은 당시 조재천과 함께 정판사 ‘위폐’ 사건의 담당 검사로서 피고인들의 억울함을 외면했다. 그들은 모두 하나였다.

[평행이론 8] 극우 세력의 테러

2024년의 윤석열 정권 : 친위 쿠데타와 파시즘적 폭거를 완성하기 위해, 윤석열 정권은 공권력의 무력 행사에 발맞춰 움직이는 광기 어린 극우 세력을 행동대장으로 동원했다. 12·3 내란 사태 당일과 그 이후, 극우 유튜버들과 극우 정당 세력은 서부지방법원 폭동을 비롯해 온갖 물리적 폭력을 무차별적으로 행사하며 윤석열의 내란 범죄를 맹목적으로 정당화하고 지지하는 난동을 벌였다. 대중의 광기를 동력 삼아 민주주의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폭력으로 체제 전복을 시도한 야만적 사건이었다.

1946년의 미군정 : 정판사 사건 발표라는 신호탄이 떨어지자 미군정의 비호 아래 암약하던 극우 파시즘 세력 역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평안청년회를 비롯한 각종 극우 청년 단체들은 ‘조선공산당 타도’를 외치며 백색테러의 전면에 나섰다. 이들은 정권에 비판적이던 언론사인 《조선인민보》와 《자유신문》 등을 습격해 인쇄 설비를 무참히 때려 부수었으며, 서울 한복판에서 좌익 인사와 민주적 활동가들을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고 살해하는 폭동을 자행했다.

권력은 이들의 폭력을 주도면밀하게 방조했다. 미군정과 친일 경찰들은 극우 세력의 잔혹한 테러를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조선인들의 내부 문제”라며 수수방관했고, 체포된 극우 테러범들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며 사실상 범죄를 묵인하고 조장했다. 한국현대사에서 국가 공권력과 민간 폭력 세력이 결탁하는 ‘테러 정치’가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출발점이었다.

극우 파시즘을 막아 내는 유일한 방법

78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1946년의 정판사 ‘위폐’ 사건 조작과 2024년의 비상계엄 사태는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전형적인 친위 쿠데타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은 결정적인 차이점을 지닌다. 2024년의 내란은 국회와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깨어 있는 시민들의 결연한 맨몸 저항과 야당의 사투로 저지당한 ‘실패한 쿠데타’였던 반면, 1946년 미군정과 우익 세력이 결탁한 정판사 사건은 제1야당을 궤멸시키고 정적을 파멸시킨 ‘성공한 쿠데타’였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할 괴물은 바로 이 ‘성공한 쿠데타’가 대한민국 사회에 남긴 끔찍한 악성 유산이다. 비상계엄 사태 직후 치러진 2025년 대선의 최종 득표율은 한국 사회에 똬리를 튼 파시즘의 맹아를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내란을 막아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 49.42%의 국민들은 국가 권력의 폭주와 내란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새긴 성숙한 주권자들이었다.

그러나 내란 정당 소속인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지지한 표심 역시 무려 41.15%에 달했다. 이 41.15%라는 숫자는 1946년 정판사 사건의 조작 성공을 시작으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독재의 역사를 목도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력으로라도 권력만 잡으면 그만”이라거나 “강력한 독재가 차라리 낫다”거나 혹은 “빨갱이는 무조건 때려잡아야지”라는 반공주의 체제에 세뇌되어, 거꾸로 된 교훈(?)에 포섭된 세력이 여전히 견고함을 뜻한다.

파시즘은 소수의 권력욕에 눈먼 자들이 무력으로 국가를 전복하는 행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히틀러와 같은 반민주주의적 권력자와, 왜곡된 인식으로 그 광기에 열광하고 동조하는 다수의 대중이 결탁할 때 탄생하는 거대한 괴물이다. 최근 벌어진 ‘스타벅스 탱크데이 사건’과 같은 광기 어린 만행은, 조작과 폭력의 역사가 남긴 41.15%의 일그러진 인식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위험하게 표출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1946년 정판사 ‘위폐’ 사건이라는 한국 현대사 최초의 조작된 친위 쿠데타 진실을 이제라도 낱낱이 파헤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권력의 범죄가 성공을 거두었던 80년 전의 진실을 똑바로 마주하고 뼈저린 교훈으로 삼지 않는다면, 파시즘에 동조하는 41%의 낡은 그림자는 언제든 또 다른 내란의 얼굴로 민주주의를 집어삼키려 들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무기 삼아 파시즘의 유혹에 단호히 선을 긋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비중을 압도적으로 넓혀 나가야 한다. 그것만이 무참히 짓밟혔던 1946년의 억울한 희생자들에게 바칠 수 있는 진정한 위로이자, 다시는 이 땅에 내란과 극우 파시즘의 망령이 발붙이지 못하게 할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