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제의 종언』(2025, 정직한 모색)은 윤석열을 우두머리로 한 12·3 내란 사태에 대한 직접적 성찰의 결과물이다.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진 최악의 정치적 사건에 대해 다수 대중은 경악과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그 사건의 배경에 대한 인식과 동류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해법에 대해서는 합의된 인식이 없었다. 물론 대안에 대한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그 사태 이후 대통령제의 고질적인 문제를 자각한 이들이 늘어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저자는 단지 문제의 자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경로 의존성에서 쉽게 벗어나기는 어렵다. 현행 대통령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대통령제 자체를 내려놓자고 말하는 이는 여전히 드물다. 현행 유지가 아니라면 기껏해야 대통령의 임기를 조정해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가장 크다. 간간이 대통령의 권한을 좀 더 나누는 ‘분권형 대통령제’나 ‘이원집정부제(준대통령제)’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은 내란 우두머리가 된 대통령 탓에 대통령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 내용은 권력구조의 문제를 넘어 ‘선거-정당체제’까지를 포괄한다. 나름 저명한 정치학자인 레이파르트(Lijphart)의 논의에 기대어 다수결 민주주의 모델과 합의 민주주의 모델을 구분하고, 대통령제와 다수대표제-양당제-단독정부의 결합을 전자의 대표적인 형태로, 의회제와 비례대표제-다당제-연립정부의 결합을 후자의 대표적인 형태라고 주장한다. 이는 매우 단순화된 유형화이긴 하나 권력구조의 문제가 단순히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정당체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프레임에 기초하면, 의회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근거로 종종 소환되는 제2공화국의 짧은 역사적 경험은 ‘선거-정당체제’의 전환 없는 권력구조 변경만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민주당 신파와 구파의 대립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 이전에 박정희의 군사쿠데타가 제2공화국을 무너뜨린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말이다.
책에서는 개헌의 문제도 중요하게 다룬다. 이 문제는 내란 사태 훨씬 이전부터 87년 체제의 한계를 논의할 때마다 나왔던 것이지만 찔끔찔끔 논란이 이어지다가 매번 실행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해관계의 다양성도 있지만 여러 구조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안이어서 포괄적인 개헌이 쉽게 이루어지리라 예상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대통령의 계엄선포권을 통해 내란 사태가 발발했기에 적어도 헌법 제77조만이라도 개정하는 원포인트 개헌은 충분히 가능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책 258쪽의 개정안 예시는 그렇게 나왔다. 골자는 계엄선포를 국회에 통고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즉각 승인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4월 3일 우원식 국회의장 주도로 계엄에 대한 국회 승인권 도입을 포함한 일부 개헌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그러나 5월 7일 본회의 표결은 재적 인원 미달로 무산되었고, 이후 추가 표결 없이 최종 무산되고 말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내란을 방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 개혁은 실종된 채 더불어민주당의 요란한 내란청산 깃발만 나부꼈다.
가라앉았던 개헌 논의는 우원식 국회의장 후임으로 취임한 조정식 국회의장이 촉발했다. 친명계 핵심으로 분류되는 그는 7월 28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국민 선택의 문제”라며 이재명 대통령의 연임 가능성을 열어놓는 발언을 했다. 난리가 났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그는 오해일 뿐이라며 유감의 뜻을 밝혔지만, 단순한 말실수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부적절한 언급이었다. 국민의힘은 제대로 꼬투리를 잡았다며 정치적 공세를 폈다. 청와대가 직접 이 대통령의 연임 시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확답하라는 것이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등판하여 그러한 일은 헌법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음에도,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확답하라는 요구는 그치지 않고 있다.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라고 명토를 박는다. 1980년 개헌 과정에서 삽입된 이 조항의 취지는 현직 대통령의 장기 집권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개헌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게도 임기연장이나 중임이 허용되도록 하는 것은 개헌의 한계를 넘어서는 반헌법적 조치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전두환도 적어도 겉으로는 감히 부정할 수 없었던 원칙이다. 헌법학계에서도 이견이 없는 통설이다. 최소한 이를 알고 있는 정치인이라면, 게다가 6선 의원에다 국회의장까지 맡은 연륜 있는 정치인이라면, 현직 대통령의 연임을 시사할 수도 있는 발언을 결코 쉽게 내뱉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지난 8월 14일에는 이 대통령이 직접 개헌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중요한 문제를 자신의 SNS를 통해서 전달했다는 점이 무척 의아하지만, 상당히 구체적인 생각을 내놓았다. ▲ 5.18 정신과 부마항쟁의 헌법 전문 명기 ▲ 대통령 권한 중 감사원 관할권·총리 추천권·인사권 일부의 국회 이관 ▲ “4년 중임 또는 연임제”로 대통령 임기 변경 ▲ 지방자치 및 국민 기본권 강화 반영이 그 핵심이다. 권력구조 문제에 대해서는 첨언도 했다. “4년 중임 또는 연임제”는 중간평가를 통한 책임정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폈고, “이원집정제”나 “내각제”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여론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개헌이 추진되면 자신의 임기를 단축할 의사도 있다고 했다. 논란이 된 자신의 연임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주장처럼 4년 중임제는 현행 5년 단임제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4년 중임제를 도입하면 정말 중간평가를 통한 책임정치 구현을 실현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시각은 매우 회의적이다. 준대통령제 또한 대통령제의 고유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이 책은 비판한다. 대안으로 남겨두는 것은 의회제다. 그러나 원론적인 방향을 넘어 특정한 형태의 의회제가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앞서 언급한 합의 민주주의로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의회제-비례대표제 결합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의회제와 비례대표제의 구체적인 형태와 작동 방식에 대한 논의는 이 책의 큰 공백 지점이다. 예를 들어, 총리의 권한이 강한 영국식 의회제를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아니면 내각의 권한을 더 키우는 방식이어야 하는지,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처럼 지역구를 일정하게 유지할 것인지 아닌지 등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논의에서 핵심은 어떤 제도들을 어떻게 배치하는 것이 권력구조 및 정치체제 전반의 민주화를 진전시킬 수 있는가를 엄밀하게 따져보는 것이다.
지난 8월 31일에는 더불어민주당이 개헌추진단을 발족했다. 권력구조를 포함한 포괄적인 개헌 논의를 통해 다음 총선 1년 전 국민투표 실시를 목표로 개헌을 추진한다고 한다. 김태년 의원을 단장으로 한 이 기구는 특별히 염두에 두고 있는 권력구조 개편 방향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견해와 마찬가지로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기운 기존 흐름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계속해서 이 대통령의 연임 가능성을 열어놓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이야 이러한 의구심을 당연히 정치적 공격의 소재로 활용할 것이 뻔하다. 그런데 최근 한겨레신문 성한용 선임기자가 이재명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막을 세 가지 결단 가운데 하나로 선제적 연임 포기 선언과 개헌 추진을 언급한 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초헌법적 시도를 포기하겠다고 천명해야만 그 진정성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주장인데, 이는 국민의힘 상대편에서조차 그의 정치적 신뢰가 추락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이 대통령이 침묵할 것이 아니라 직접 한마디라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나를 뭘로 보고 이런 이야기들을 꺼내냐고 말이다. 연임 포기를 선언하라니, 자신이 반헌법적 연임 시도를 할 것으로 의심된다는 말이냐고 꾸짖으면서. 연임 가능성 문제가 거론되는 것 그 자체가 얼토당토않은 상황이지만, 정치적 상식이 의심받는 시대의 한 단면이겠거니 싶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키운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고 부정선거론에 빠지고 내란 우두머리가 되는 과정 또한 상식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제의 폐해가 그처럼 극명하게 드러난 적은 없다. 그게 바닥을 친 게 아닐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상식을 회복하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대통령제 너머를 상상하자. 이 책이 그 길을 여는 마중물이기를 기대한다.
<글쓴이 최광은> 정직한 모색 운영위원입니다. 민주주의, 불평등, 권력구조를 중심으로 연구를 하고 있고, 대학에서 정치학도 강의하고 있습니다. 최근 펴낸 책으로는 <대통령제의 종언>(2025, 정직한 모색)과 <위성정당 OUT!>(2024, 정직한 모색)이 있습니다. 이메일 gwangeun@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