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글로벌 금융 패권 전쟁(2) : 중국의 제한된 도전

투키디데스 충돌인가? 킨들버거 공백인가?

2026년 5월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고집불통 역사덕후 시진핑 주석이 변덕쟁이 사업가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합니다.

일 벌이기 좋아하는 호사가(好事家)들, 말 마디나 하는 언론의 호들갑이 이어졌습니다. 시진핑이 트럼프 앞에서 ‘한 번 붙어 볼래?’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을 했으니 미중 충돌이 임박했다는 것이지요. 글쎄요… 저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원래 정상회담에서 오가는 말들은 다 ‘짜고 치는 고스톱’입니다. 미리 정해진 할 말과 들을 말을 주고받는 것뿐입니다.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서 “아테네의 부상(浮上)과 이에 따른 스파르타의 두려움” 때문에 전쟁은 필연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통찰을 이어받은 사람이 앨리슨(Graham T. Allison)입니다.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사람도 앨리슨입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예정된 전쟁』(2017)에서 15세기 이후 500년 동안 16차례 신구 패권 갈등 상황이 있었고 그 가운데 12 차례가 전쟁으로 귀결되었다고 했습니다. 투키디데스와 마찬가지로 ‘신흥국의 부상에 따른 기존 패권국의 두려움이 전쟁의 원인이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앨리슨은 전쟁으로 이어진 12차례보다 전쟁을 피한 4차례 분석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지도자들이 외교적 상상력과 단호한 의지를 발휘한다면, 전쟁이라는 숙명을 피할 수 있다’는 게 앨리슨이 정작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시진핑은 역사덕후답게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말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2013년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 두 대국을 수용할 수 있다”라든지, 2023년 당시 중국 방문 중이던 미국 민주당 척 슈머 일행에게 “(투키디데스 함정은) 필연이 아니다. 넓은 지구는 중미가 각자 발전하고 번영하는 것을 완전히 수용할 수 있다”는 말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사실 시진핑은 충돌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오히려 오늘날 세계의 위기는 ‘킨들버거 함정’에 가깝습니다. 2차 대전 후 마셜플랜을 입안했던 킨들버거(Charles P. Kindleberger)는 『대공황의 세계 1929~1939』에서 기존 패권국 영국의 능력 부족과 새롭게 떠오르던 미국의 의지 부족이 세계 대공황, 더 나아가 2차 대전의 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킨들버거는 “영국은 안정자 역할을 할 수 없었고, 미국은 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유명한 통찰을 남겼습니다. 2017년 나이(Joseph S. Nye)는 이를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 Trap)’이라고 불렀습니다.

인류사는 고립주의가 득세하고 각자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대립했던 1929년 대공황 직전 세계와 매우 비슷한 모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2026년 판 킨들버거 함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세계는 미국의 압도적 패권 아래,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며 제약 없는 자유무역과 상대적 평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지난 35년은 오히려 인류사에서 극히 예외인 시대였습니다. 오늘날 세계가 마주하고 있는 극심한 보호무역주의, 블록화, 군사 충돌, 지정학적 긴장은 세계화 시대가 완전히 끝났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미 세계는 ‘경쟁적 다중 질서’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하나의 보편질서가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질서가 서로 중첩되고 다투면서 공존하는 세계가 열린 것입니다.

달러의 세 번째 위기

1941년 루스벨트는 세계사에 개입을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미국은 이른바 ‘동맹국의 자유와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국방비를 지불하고 세계 질서를 조율하는 경찰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근본 힘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 정가는 동맹국들이 미국을 뜯어먹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동맹국들이라는 게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무임승차하며 경제적으로 미국을 착취해 온 도둑놈이라는 인식이지요.

이제 글로벌 안보는 ‘자유세계를 지킨다’는 가치와 이념의 영역이 아닙니다. 철저한 유료 구독 서비스이자 안보장사입니다. ‘항공모함 1척 전개에 1조 원, B-1B 랜서(Lancer) 전략폭격기 출격시 시간당 1억 2천만 원’이라는 식입니다. 미국은 더이상 동맹국에 공짜 안보를 제공하지않습니다. 달러가 세 번째 위기를 맞게 된 근본 원인입니다.

미국 달러(USD)는 1944년 7월 22일 이래 글로벌 단일 지배력을 자랑하는 기축통화입니다. 하지만 달러도 두 차례 결정적인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미국은 정교한 지정학적·제도적 메커니즘을 통해 위기를 돌파해 왔습니다.

첫 번째 위기는 1971년 닉슨 쇼크였습니다. 금태환을 일방적으로 폐기하자 달러의 신뢰는 바닥까지 내려앉았습니다. 키신저가 나섰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드 왕가와 밀실 협상을 했습니다. 미국이 왕가의 안위를 보장하는 대가로, 중동 원유는 달러로만 거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른바 페트로 달러(Petro-dollar) 시스템입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석유를 사려면 달러를 항상 조달하고 강제로 보유해야만 했습니다. 거대한 실물 에너지(석유) 결제 수요를 억지로 창출하여 달러 패권을 지킨 것입니다.

두 번째 위기는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습니다. 미국 자본 시장 중심부의 탐욕과 부실 채권 남발로 전 세계에 금융위기가 덮쳤습니다. 달러뿐 아니라 미국 금융시스템 자체의 신인도가 바닥을 쳤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G7을 포함한 핵심 우방국들과 ‘상시무제한 통화 스와프(Swap)’를 체결해서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미국이 금융사고로 치더라도 언제든지, 얼마든지 세계 주요국이 나서서 갚아주겠다는 보증을 선 것입니다. 사고치고 빚진 놈이 갑질하는 희한한 체제입니다. 달러 공급권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만이 쓸 수 있는 술책이었습니다.

2026년 현재 달러는 세 번째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달러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복합 위기입니다. 미국의 국가 부채 총액은 2026년 8월 40조 달러를 돌파했으며, 이자만 연간 1조 달러가 넘습니다. 전문가들은 2030년쯤 미국의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130%를 돌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빚을 갚기 위해 일부러 달러 가치를 슬금슬금 떨어뜨리면서 스테이블코인과 RWA로 탈출구를 만들고 있습니다. 미국의 금융 독점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위안화(e-CNY/DCEP), 은밀한 시작과 조심스러운 상용화

전 세계가 비트코인과 테슬라의 가상화폐 결제 도입 여부로 요동치던 2014년,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국가 주도 법정 디지털 화폐 도입을 시작했습니다. 세계 다른 중앙은행들이 ‘디지털 화폐’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당시 중국인민은행은 산하에 극비 연구팀을 꾸려 디지털 화폐 연구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이 연구소는 설립 후 간판조차 달지 않은 채 철저히 베일에 싸여 은밀하게 시스템을 설계했습니다. 3년이 지난 2017년에야 비로소 디지털화폐연구소(数字货币研究所)라는 간판을 달았고, 5년이 지난 2019년에야 중국인민은행 부국장 출신 무창춘(穆长春)이 초대 연구소장으로 부임하며 조직을 전면에 노출했습니다.

이후 중국 당국은 핵심 기술 생태계를 장악하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2019년 11월 중국 최대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华为)와 핀테크 합작을 체결했고, 2020년 4월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안면인식기술을 보유한 샹탕커지(商汤科技)와 합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장차 도입할 디지털 화폐 시스템에 안면인식을 비롯한 고도화된 생체 인증 기술을 결합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2020년 7월에는 중국의 우버로 불리는 최대 차량 호출 플랫폼 디디추싱(滴滴出行), 배달 앱 시장 점유율 1위 메이투안(美团) 등과 잇따라 시스템 연동을 위한 기술 협력을 체결하며 일상생활까지 통제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금융망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중국인민은행이 극비 연구소까지 차려 10년 넘는 세월과 막대한 자금 투입을 통해 완성해가고 있는 디지털 위안화(e-CNY/DCEP, 数字人民币)의 개념과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디지털 위안화(e-CNY) 상용화는 매우 조심스럽고 주도면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른바 점(點)-선(線)-면(面) 전략이라고 불립니다. 한 번에 전국으로 확산하기보다 특정 도시에서 (점) 테스트하고, 연결한(선) 다음 전국으로 확대한다(면)는 것입니다.

2020년 5월부터 선전(深圳), 쑤저우(苏州), 슝안신구(雄安新区), 청두(成都) 등 4개 도시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현장을 포함한 ‘4+1 체제’로 첫 시범 사용을 시작했습니다.

중국의 금융은 아날로그 금융 시스템과 전국 단위 신용카드 인프라가 엄청나게 뒤떨어졌다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14억 중국 인민들은 전통적인 종이 수표나 신용카드 단계를 거치지 않고 디지털 영역으로 직행했습니다. 금융 ‘리프로깅(Leapfrogging, 건너뛰기)’입니다. 가판대 상인과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까지 QR코드로 결제한다는 것은 이제 새롭지도 않은 이야기입니다. 인민들 사이에 뿌리내린 디지털 결제 습관과 경제의 모세혈관까지 침투한 인프라는 e-CNY가 빠르게 자리잡는 최고의 토양이 되고 있습니다.

민간 금융 플랫폼의 힘을 회수하라

중국 정부가 천문학적 예산과 공권력을 투입하여 e-CNY를 전국 단위로 강제 확산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CNY 강제 확산의 가장 중요한 대내적 이유는 민간 금융 플랫폼들이 독점하고 있는 방대한 인민들의 소비 데이터와 신용 지배력을 국가와 중앙은행으로 회수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중국의 디지털 결제 시장은 알리페이(53%)와 위챗페이(42%)가 약 95%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무섭게 팽창하고 있는 민간 플랫폼들의 빅데이터 금고에는 인민들의 초단위 이동 경로, 선호 소비 행태, 은밀한 신용 등고급 정보가 국가의 통제 없이 고스란히 쌓이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민간 금융 플랫폼들의 권력 독점이 체제 안정과 공산당의 금융 지배력에 대한 근원적 도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e-CNY는 원리상 익명이 될 수 없습니다. 돈을 쓰면 무조건 흔적이 남게 되어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소액 소매 거래할 때는 개개인의 익명성을 보장한다며 ‘관리 가능한 익명성’을 연일 선전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입니다. e-CNY는 국가가 원할 경우 언제든 자금의 이동 추적·송금 관리, 나아가 계좌 동결까지 원격으로 집행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20년 10월 12일 선전시에서 5만 명에게 지급된 e-CNY 200위안은 2020년 10월 18일에 만료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었습니다. 프로그래밍된 것은 100% 통제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설계된 e-CNY는 “전지적 금융 격자망”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모든 인민을 가둘 수 있습니다. 디지털 공간은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e-CNY는 지금 민간 금융 플랫폼의 손에 있는 빅데이터 금고에 쌓인 정보의 힘을 국가의 통제 장치 속으로 완전히 회수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의 금융 무기화에 대항하라

중국 정부가 직면한 가장 뼈아픈 공포는 미국의 ‘금융 무기화’입니다. 2022년 우크라이나침공 이후 전격 발동된 서방 진영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는 중국 금융 관료들에게 깊은 경각심을 주었습니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서방의 외환 금고에 예치해 둔 외환 3,000억 달러가 하루아침에 동결 조치로 압류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주류 시중은행들은 세계 무역 결제망 SWIFT에서 단숨에 쫓겨났습니다.

이 처참한 파국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중국은 미국과 충돌할 경우 금융봉쇄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했습니다. 미국이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 국방수권법(NDAA)을 가동했을 때 대응책을 연구했습니다. 이에 따라 동결당할 위험이 극도로 큰 대외 달러 자산, 10년 물 미국 국채를 시장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팔아치웠습니다. 2026년 6월 기준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량은 약 6,334억 달러(약 633조 4,000억 원)로 일본, 영국에 이어 세계 3위로 내려앉았습니다. 가장 많이 보유했을 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중국 정부는 국채를 매각하여 확보한 자금으로 안전 자산의 끝판왕 실물 금(金)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중국인민은행이 주도한 장기적이고 공격적인 금 비축 전략 때문에 세계 금 가격은 폭발적인 상승 랠리에 들어갔습니다. 2024년 말 온스당 2,500달러 선을 가볍게 돌파한 이후, 2025년 한 해 동안에만 무려 65% 폭등하며 연말 기준 4,310달러에 달하는 역사적 랠리를 보여주었습니다. 급기야 금값은 2026년 1월 28일 온스당 5,589.38달러라는 인류 역사상 최고가를 찍었습니다.

위안화를 e-CNY로 바꾼다고 위안화의 힘이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화폐의 힘은 첫째 경제력, 둘째 금 보유량, 셋째 시스템 합의(예: 브레튼우즈 협정)에 따라 결정됩니다. 2026년 추정 중국의 명목 GDP는 약 20조 8,500억 달러로 미국의 약 64% 정도입니다. 2021년 미국의 77% 정도까지 접근했으나 이후 다시 격차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금보유량의 경우 미국이 8,100톤(1위)인 데 비해 중국은 2,300톤(5위)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실제 금 보유량이 약 5,500톤에 이른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확한 사실이야 아직 알 수 없지만 쌓이는 금만큼 e-CNY의 힘도 강해질 것입니다.

독자적인 위안화 결제망을 구축하라

중국은 오랫동안 미국의 결제 봉쇄를 완전히 우회할 수 있는 위안화 자체 결제 인프라 ‘CIPS(국경 간 은행 간 결제 시스템, 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를 다져왔습니다.

상하이를 글로벌 금융 거점으로 구축하겠다는 포석 아래 2012년 1단계 설계를 시작한 CIPS는, 2015년 10월 공식 상용화된 이후 전방위 세력 확장을 계속해왔습니다. 2026년 6월 기준 전 세계 직접 참여 기관 210곳, 간접 참여 기관 1,619곳을 확보했으며, 192개 국가·지역에 5,200곳이 넘는 금융 기관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SWIFT망이 완전히 폐쇄되는 극단적 위기 국면에서도 무역 대금을 원활하게 결제할 수 있는 독자적이고 견고한 금융 대피소망이 구축된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중국은 미국이 지휘하는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 맞서 지분을 독점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기획·설립했습니다. 이를 중국의 해외 자원 거점확보 및 사회기반시설 건설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带一路)’와 치밀하게 연계했습니다. 신흥 개발도상국에 막대한 AIIB 차관을 위안화로 직접 공여함으로써 위안화의 해외 유통 수요를 팽창시키고 있습니다. 브릭스 플러스(BRICS+) 동맹국과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 간 물류 대금을 결제할 때 달러가 아닌 회원국 자국 화폐로 상호 결제하는 것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다자간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공동 청산 플랫폼 ‘엠브릿지(mBridge) 프로젝트’의 상용화 성공도 중국 금융 영토 확장의 실체를 보여줍니다. 중국인민은행이 홍콩금융관리국(HKMA),태국 중앙은행, 아랍에미리트(UAE) 중앙은행과 공동 주도해 온 이 대안 인프라는, 2024년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정회원으로 전격 가입하며 글로벌 에너지 시장 전체에 거대한 핵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엠브릿지는 SWIFT처럼 달러도 필요 없고, 이틀이라는 시간도 필요 없습니다. 참가국 중앙은행들이 자국 화폐로 표기된 디지털 화폐(CBDC)를 이용해 상대국 중앙은행과 직접 실시간 P2P로 무역 결제를 단 몇 초 만에 완료합니다.

2025년과 2026년에 걸쳐 본격적인 상용화 궤도에 돌입한 엠브릿지 플랫폼의 누적 무역결제액은 4,700억 위안(약 690억 달러)을 돌파하는 실질적 궤도에 올라섰습니다. 이 플랫폼에서 거래되는 무역 대금의 무려 95%가 중국 위안화라는 것이 미국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2026년 7월, 중국인민은행 상하이 지사는 싱가포르의 중국공상은행(ICBC) 지점과 연계하여, 중국 해운사가 수입한 선박 물류비용 1,000만 위안을 CBETS(국경 간 e-CNY 이체 서비스, Cross-Border e-CNY Transfer Services)를 통해 단 3초 만에 결제하는 기술을 실증했습니다.

이처럼 달러의 통제권을 완전히 우회하는 디지털 무역 결제 벨트의 비약적 팽창에 극도의 위협을 느낀 미국 금융 당국은 막후에서 거센 외교 압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엠브릿지 공동 연구에 전면 참여하던 국제결제은행(BIS) 혁신 허브가 돌연 철수했습니다. 공식 발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금융 영토 확장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견제와 압박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중국의 제한된 도전

위안화가 달러를 밀어내고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것이라는 제법 오래된 주장이 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쇠락과 맞물려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중국은 아직 그럴 생각도 의지도 능력도 없습니다.

물론 중국은 건국 100주년인 2049년을 목표로 그리는 꿈이 있습니다. 이른바 중국몽(中國夢)입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좋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꿈은 꿈일 뿐입니다.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조차 이미 꿈이라는 것을 자각한 상태입니다. 꿈속에서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곧 깨어나게 됩니다. 꿈에서 깨어나면 곧바로 냉혹한 거시경제 지표와 시스템의 한계를 마주하게 됩니다. 중국의 금융 굴기 시도는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장벽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첫째 위안화의 미미한 위상입니다. 2026년 1월 기준 위안화의 글로벌 결제 비중은 약 3.13%로 세계 5위입니다. 1위 달러화는 49.7%, 2위 유로화는 22.4%입니다. 비교가 안 됩니다. 영국 파운드화(6.9%), 일본 엔화(3.4%)에도 밀립니다. 게다가 위안화 결제 가운데 약 75%가 홍콩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지역편중도 심각합니다. 글로벌 외환보유고 비중을 보면 더 처참합니다. 2025년 말 위안화의 글로벌 외환보유고 비중은 1.95%입니다. 이에 반해 달러화는 56.8%, 유로화는 20.3%에 달합니다. 위안화는 일본 엔화(5.4%) 영국 파운드화(4.8%)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캐나다 달러화(2.6%), 호주 달러화(2.1%)보다도 떨어집니다.

둘째, 신뢰와 시스템의 장벽입니다. 기축통화는 단순히 화폐의 형태를 디지털로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 군사, 경제, 과학, 금융이 결합된 국가 신용의 종합 예술입니다. 미국의 압도적인 경제력과 강제된 신용이 달러 가치의 든든한 담보입니다. 전 세계적인 신용과 국력에서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 패권 교체는 물론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디지털 위안화 도입이 달러 패권을 허무는 출발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허망합니다. 도전이라도 가능하려면 최소 30년 이상 긴 세월이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볼 때 중국이 추진해온 e-CNY/DCEP, CIPS, CBETS, mBridge 등 대안 금융 시스템은 달러를 대체하고 패권을 교체하려는 무기가 아닙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극단적 금융제재, 전면 봉쇄 폭탄이 투하되었을 때를 대비한 생존용 방어무기입니다. 창이 아니라 방패입니다.

물론 싸움은 상대가 있는 것이고 창이 낡으면 방패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요? 그것은 운의 영역이지만, 중국 내부의 심각한 균열과 붕괴는 시간이 마냥 중국 편이 아닐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탕핑(躺平)과 라오수런(老鼠人)

첨단 IT 국가 중국의 이면에는 거대한 플랫폼 노동자층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2024년 현재 중국의 플랫폼 노동자는 약 3억 2천만 명에 달합니다. 중국 전체 노동 인구의 40%입니다. 여기에는 메이투안·어러머 등의 배달 노동자, 디디추싱의 운전기사, 앱을 통해 단기 근무하는 공장 노동자들이 포함됩니다. 이들 대부분은 대학이나 전문대를 졸업했습니다. 매년 1,200만 명에 달하는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지만, 최첨단 IT 기업에 취업하는 인원은 극소수이며 대다수는 불안정과 극단적 저임금에 시달리는 플랫폼 노동자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20년 전 ‘농민공’문제가 플랫폼 노동자들로 모양만 바뀌어 지속되고 있습니다.

2021년 중국 청년들은 ‘탕핑(躺平,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저항을 시작했습니다.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탕핑은 단순히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성취가 불가능한 현실에 대한 소극적 저항입니다. 많은 중국 청년들이 자신들이 착취만 당하고 기회는 사라진 세대라고 느끼며, “아무리 노력해도 보상이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2015년 이후 노동운동이나 NGO 활동이 철저히 탄압받으면서 불만을 표출하고 처지를 개선할 조직들이 사라졌습니다. 이 때문에, 청년들은 개인적이고 소극적인 ‘탕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전문가의 진단입니다.

탕핑에서 더 나아가 스스로를 ‘라오수런(老鼠人, 쥐인간)’이라 부르는 현상이 2025년부터 확산되고 있습니다. 대인관계를 기피하고 뚜렷한 목표 없이 최소한의 에너지로 생활하는 중국 청년층을 뜻합니다. 원룸에서 저가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낮을 바꿔 생활합니다. 새벽 2시쯤 자고, 오전 10시쯤 깨서 침대에서 스마트폰, 드라마 시청, 게임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이런 생활방식에 점점 더 많은 중국 청년들이 공감하고 있으며 직장인 중에서도 ‘주말 라오수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근저에는 중국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날 중국의 모습은 겉보기에 화려합니다. 그러나 그 혜택은 1억 200만 명의 공산당원과 가족을 포함한 고소득 중산층 4억 명에게만 돌아가고 있습니다. 나머지 10억 명은 첨단 국가 중국의 하중을 온몸으로 간신히 버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중국은 4억과 10억으로 완전히 쪼개진 채 K자형 성장이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탕핑과 라오수런은 기회가 차단된 구조적 모순 속에서 최소한의 생계만으로 버티며 노동과 소비를 거부하는 현상입니다. 중국 당국은 당연히 이 현상을 매우 경계합니다. 그러나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습니다. 중국 국가안전부는 탕핑, 라오수런 현상이 외세의 선동과 개입 때문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문제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늘이 짙은데 잠재적인 저항 요소를 미리 차단하겠다는 디지털 레닌주의로 절망의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암울한 그늘, 디지털 레닌주의

디지털 레닌주의는 빅데이터·인공지능(AI) 기술 등 첨단 IT 기술을 동원해 과거 불완전했던 레닌주의를 보완, 사회 전반을 촘촘하게 통제하고 감시하는 체제입니다. 작동 방식은 다 음과 같습니다.

첫째,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여 개인에게 점수를 매기고 감시합니다. 이를 통해 특정 인물을 요주의 인물로 분류하거나, 향후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 있는 사람을 미리 예측하여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둘째, 기술과 인력이 결합된 격자망 감시체제입니다. 디지털 레닌주의는 단순히 기술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IT 기술(CCTV, 스마트폰, 인터넷 감시)과 대규모 인력을 결합합니다. 기계와 인간의 ‘격자망식 감시 체제’를 운영합니다. 촘촘하게 짠 그물망 같은 감시망을 유지하기 위해 기술인력만큼이나 방대한 관리 인력을 현장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셋째, 단어만큼이나 고색창연한 디지털 레닌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핵심 이유는 사람들이 감시에 대해 느끼는 ‘양가감정’ 때문입니다. 인민들은 AI 격자망 감시를 단순한 억압이 아닌 ‘범죄 없는 안전’과 ‘편리한 디지털’로 받아들입니다. 노트북을 카페에 두고 한 시간 동안 자리를 비워도 안전하다는 믿음이 ‘행복한 감시 국가’를 지탱합니다.

그러나 디지털 레닌주의는 벌써부터 엄청난 댓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중국은 내부 불만의 폭발을 막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2010년 중국의 감시·통제 예산은 국방비를 넘어섰습니다. 지금은 국방비보다 20% 이상 더 많은 예산을 감시·통제 시스템 유지에 쏟아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이 빚 갚다 망할 판이라면 중국은 감시하다가 망할 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글로벌 질서의 동요를 막기는 어렵습니다.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며 세계의 군사적 갈등을 수습하거나 새로운 패권국으로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디지털위안화를 개발하고, 금을 모으고, 새로운 국제결제망을 구축하고, 대안 금융시스템을 만들면 뭐합니까? 첨단기술은 감시에나 쓰고 새로운 금융시스템은 인민들 통제하는데 써먹어서는 패권국가는 고사하고 체제유지도 어렵습니다.

정상회담 때마다 고전 인용하기를 즐기는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 고전의 오랜 충고를 전합니다.

<글쓴이 신석준> 20년 전 사회당 대표를 지낸 것이 인생의 가장 굵직한 이력입니다. 지금은 정직한 모색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AI와 돈에 관심’만’ 많습니다. 전문가들에게 배운 것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알아듣기 쉽게 알려주는 것을 재미있어 합니다. 낡은 생각에 얽매이지 않고 편견 없이 만날 관계와 상호작용들이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비전을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