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슈퍼사이클 시대, 초과이윤의 민주적 통제를 위하여>에서 강조한 것은 간단하다. 최근 한국 반도체 산업의 막대한 초과이윤은 회사 경영진의 노력, 노동자의 노동, 주주의 투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막대한 이윤 창출 과정에는 분명히 사회 전체가 기여한 몫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청구권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청구권에 기초하여 최소한 초과이윤의 일정 부분을 사회적으로 환수하는 조치가 필요하며, 그 구체적 방안으로는 세제 개편을 통한 법인세와 소득세의 누진성 강화, 현세대와 미래세대 모두를 위한 자산이 될 국부펀드 설립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부 진보 진영은 초과이윤의 분배가 회사 경영진과 주주, 정규직 노동자를 넘어 해당 산업의 비정규직 및 하청 노동자에게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현재의 협소한 분배 시도보다는 진일보한 것이긴 하지만, 이 또한 좁은 범위의 이해관계자에 기초한 조합적 분배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회적 청구권에 기초한 사회적 분배는 조합적 분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포괄하며 뛰어넘는 것이다.

한편, 사회적 분배의 목소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삼성전자는 지난 6월 깜짝이벤트를 내놓았다. 자사 제품을 구매하면 구매금액 20%만큼 온누리상품권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판매마진은 한시적으로 줄어드나 제품 판매를 확대하고, 막대한 성과 일부를 국민에게 보답한다는 이미지를 얻으려는 다소 얄팍한 계산이었다. 삼성전자 제품 구매를 고려하던 일부 소비자에게는 분명 희소식이었을 테지만, 대다수 국민과는 무관한 “국민과 함께” 이벤트였다.
지난 글에서 첨단전략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지난 5월부터 판매가 시작된 국민성장펀드, 잠재성장률 제고에 기여하는 전략산업 투자를 목적으로 내년부터 가동되는 이른바 K-국부펀드를 언급한 바 있다. 이들 펀드의 재원마련과 운용방식에 차이는 있지만 공통된 목적은 반도체를 비롯한 전략산업 육성이다. 그리고 국민성장펀드의 수익은 펀드 가입자에게 돌아가고, K-국부펀드의 수익은 정부의 중장기 재정 지출 증가에 쓰일 계획이다. 이는 앞서 사회적 환수 장치의 하나로 언급한 초과이윤에 기초한 국부펀드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새로운 국부펀드의 일차적인 목적은 특정 산업에 대한 투자를 넘어 사회적 합의를 통한 사회적 투자와 분배의 촉진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사회적 환수를 위한 세제 개편은 물론 새로운 국부펀드는 의제형성조차 되지 않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5월 반도체 대기업 초과이윤의 사회적 재분배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긴급토론회 개최를 예고하고 사회적 대화의 문을 열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부와 경제계에서 반발 기류가 일자 그 토론회마저도 은근슬쩍 자취를 감췄다.
그 빈자리에는 전략적 투자 구호만 요란하다. 지난 6월 29일 청와대에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 보고회’가 열렸다. 이재명 대통령 바로 옆에 앉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접 투자 구상을 발표했다.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국가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고 향후 10년간 최대 2,00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야심 찬 청사진이 제시되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7월 15일 2026년 하반기 업무보고에서 ‘3대 메가 프로젝트’의 투자 속도를 높이기 위해 국유지 수의계약 공급, 사용료 및 대부료 최대 100% 감면, 예비타당성조사 신속 진행 등의 편의를 봐주겠다고 밝혔다. 또한 정부는 내년 예산 가운데 반도체 산업 인프라 구축 등의 사업에 올해보다 97.2% 늘어난 21조 3천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정부가 산업정책을 수립하고 관련 산업의 진흥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금의 움직임은 그런 수준을 넘어섰다. 정부가 아예 기업의 손발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 지난 6월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 보고회에서 이 대통령의 ‘폴더 인사’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반도체 대호황으로 정부 세수가 막대하게 자연 증가하는 것은 상수다. 정부는 이 추가 세수 활용 방안을 어떻게든 짜내야만 한다. 9월 1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된 ‘2027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국세 수입이 올해 본예산보다 194조 2천억 원이나 늘어난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162조 3천억 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가운데 45조 5천억 원은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대 분야 사업비로 내년에 지출하고, 나머지 재원 대부분은 세수 변동에 대비한 재정 안정화 장치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 미래대응기금 설치는 지난 7월 13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밝혔던 구상이다. 대규모 추가 세수를 활용하여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것이 그 취지다. 정부는 이에 대해 이미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판단하고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미래대응기금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판단과 달리 추가 세수의 활용 방안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지는 의문이다. 제대로 된 사회적 토론조차 이루어진 적이 없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투자하겠다는 추상적인 원칙 자체를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구체적인 투자 영역과 사업 항목으로 들어가면 하나하나 토론 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내년에 실행하겠다는 4대 분야 사업비가 어떻게 산출되었는지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다. 이 사업비보다 훨씬 큰 몫의 재원이 단지 정부 재정의 안정화를 위해 쓰이는 것이 적합한지도 따져보아야 한다. 사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 기금이 정부의 쌈짓돈처럼 쓰일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 새로운 국부펀드 설립이 필요하다고 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사회적 토론을 통해 이 펀드의 운용과 수익금 활용 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독립적인 운용위원회의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게 사회 전체와 국가의 미래에 투자하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글쓴이 최광은> 정직한 모색 운영위원입니다. 민주주의, 불평등, 권력구조를 중심으로 연구를 하고 있고, 대학에서 정치학도 강의하고 있습니다. 최근 펴낸 책으로는 <대통령제의 종언>(2025, 정직한 모색)과 <위성정당 OUT!>(2024, 정직한 모색)이 있습니다. 이메일 gwangeun@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