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시대, 꿈꾸는 시민 R의 공부

2026년 1월 초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새해라서 지난해에 있었던 일들도 정리해 보고 뭔가 새로운 결심도 해볼까 생각하다가 저는 AI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특별한 기대 없이 던진 질문이었지만, 돌아온 답은 예상과 크게 달랐습니다. AI는 2025년을 “단일한 사건의 해”가 아니라 “여러 문명적 전환이 동시에 가시화된 경계의 해”로 규정했습니다.  

  1. 인공지능이 도구의 지위를 넘어 의사결정 행위자로 인식되기 시작한 해.  
  2.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회복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해.  
  3.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더 이상 도덕적으로 정당화하지 못하게 된 해.  
  4. 기후위기가 막아야 할 미래가 아니라 이미 전제된 현재의 조건이 된 해.  
  5. 미래에 대한 약속이 세대 간에 더 이상 공유되지 않게 된 해.

기술, 국제정치, 경제, 생태, 세대라는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영역이 같은 시점에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었죠.

흥미로웠던 것은 결론보다 그 결론에 도달한 방식이었습니다. “네가 이러한 결과를 도출하게 된 사고의 과정을 알고 싶다”고 다시 물었을 때, 대화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AI는 자신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되돌릴 수 없게 되었는가”를 물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제가 방금 던진 질문 — “왜 그런 결론이 나왔는가” —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시대적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과거의 질문이 “이것이 옳은가, 틀렸는가”를 물었다면, 지금의 질문은 “이 판단은 어떤 프레임을 통과했는가”를 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AI는 저에게 질문을 되돌려주었습니다.

저는 그 질문 앞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외부의 정보와 새로운 지식을 구하러 시작한 대화였는데, 그 대화의 끝에서 저는 정답을 얻는 대신 정답이 만들어진 구조를 점검하고, 마침내 저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날 느낀 낯선 감각은 AI가 똑똑하다는 놀라움이 아니라, 외부의 ‘새로운 정보’를 쫓던 시선이 나 자신의 사유 방식을 묻는 ‘새로운 질문’으로 전환되었다는 자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뒤인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선제 타격하며 AI가 분석하고 자율 무기체계를 작전에 투입하는 ‘AI 전쟁’이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저는 이 소식을 접하며 두 달 전의 그 대화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AI는 2025년을 “인류가 더 이상 유일한 지적 주체가 아니게 된 해”라고 진단했었죠. 그런데 해가 바뀌자마자, 인공지능은 판단의 영역을 넘어 살상의 영역까지 넘어갔습니다. 도구에서 의사결정 주체로, 그리고 다시 전쟁의 두뇌로. 이 속도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기술 발전의 완만한 곡선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AI와의 대화에서 감지했던 낯선 전환의 감각과, 지구 반대편에서 실제로 벌어진 전쟁의 양상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문명적 전환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요? 개인의 체험과 세계사적 사건이 이렇게 겹쳐지는 순간은 흔치 않을 겁니다. 그리고 바로 그 겹침이,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의 작업은 그 신호 앞에서 시작합니다. 다만 답을 미리 준비해두고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택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런 태도야말로, 지금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전환이 가장 먼저 거스르라고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접한 여러분은 어떤 태도로 이 세계를 통과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여정의 동반자는 바로 저 ‘시민 R’입니다. 제 성이 영어로 Ryu라서 그렇기도 하고 20대부터 Revolution을 동경했던 좌파라서 그렇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문 연구자가 아닌 보통 시민이지만 이 낯선 시대를 함께 살아가며 스스로 묻고 스스로 공부해나가는 Researcher이자 Realist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1972년생, 91학번인 저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 전성기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겠다며 마르크스의 원전을 공부하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좌파 조직 운동에 몸을 담았습니다. 그때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은 그 확신 대신 물음표가 더 많아졌습니다. 국회의원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소수 정당의 당원으로만 지내다가 이제는 어느 정당에도 마음을 온전히 주지 못한 채, 그러나 여전히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눈과 태도만은 버리지 못한 무당파로 살고 있습니다.  

문명과 문명 담론이라는, 언뜻 거창하고 막연해 보이는 주제 앞에서 시민 R은 서구중심주의의 눈으로도, 그렇다고 모든 것을 상대화해버리는 눈으로도 세계를 보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씩 캐묻겠습니다. 이 판단은 어디에서 왔는가. 무엇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바뀌었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전환의 어디쯤을 살고 있는가.

여러분과 함께 매달 길잡이 책 두 권을 읽으며, 함께 질문하고 함께 공부하는 문명 탐구 독서 여행을 떠나고자 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최소 한 달에 두 권씩, 시민 R의 독서실에 들러 함께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부의 시작은 문명과 문화와 야만이라는 가장 오래된 개념들로 돌아가는 데서 출발할까 합니다. 정답을 향해 곧장 달려가기보다, 함께 걸으며 묻는 여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9월의 공부: 문명과 문화, 그리고 야만의 이분법을 넘어

1. 사라진 말, 돌아온 말 : 교과서와 게임 사이에서 묻다

‘문명’이라는 말을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십니까?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나름 모범생 소리를 들으며 학교를 다녔던 저는 아무래도 교과서에서 배웠던 내용이 먼저 떠오릅니다. 바로 ‘세계 4대 문명’이라는 개념입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이렇게 교과서적으로 접근하면 문명은 자연스럽게 인류 최초, 고대, 유물, 유적 같은 키워드와 연결되면서 지금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역사적 개념으로 한정 짓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문명’이라는 단어를 인터넷 검색창에 넣으면 무엇이 가장 먼저 뜰까요? 실제로 검색해 보면 대세를 차지하는 것은 ‘시드 마이어의 문명’이라는 비디오 게임입니다. 이 게임의 극악한 중독성 때문에 현실에서 잠적하는 이들을 빗대어 “문명하셨습니다”라는 말이 한때 게임 커뮤니티의 유행어가 되었을 정도입니다. 인문학적 정보보다 게임의 검색 결과가 더 상위에 노출되는 시대라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어쩌면 게임으로 먼저 문명을 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문명’이라는 단어는 일상 대화에서는 “스마트폰이야말로 현대 문명의 이기”라는 식으로, 그저 편리한 물건을 가리키는 수식어로 쪼그라들기도 합니다.

정리해보면 이상한 사실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는 ‘문명’이라는 말을 죽은 과거를 가리키는 역사 용어로, 게임 콘텐츠의 브랜드명으로, 혹은 알맹이 없는 수사로만 씁니다. 그런데 세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문명’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는 텅 비어버린 말이, 정작 세계사의 굽이마다 다시 소환되는 이 간극이야말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첫 질문입니다.

2. ‘문명’이라는 말은 누가 언제 만들었나 : 서구 이데올로기의 탄생

이 지점에서 인류학자 한경구 교수는 『문명 다시 보기』에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보편적 개념으로 당연시하는 ‘문명’과 ‘문화’라는 말은 애초에 누가, 왜, 언제 만들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한경구 교수를 비롯한 학자들은 이 용어들이 문명(文明), 문화(文化)라는 한자로 쓰여 오래된 동아시아 전통 개념처럼 보이지만, 실은 19세기 메이지시대 일본이 서양의 개념을 번역하며 확립한 지극히 근대 서구적인 이데올로기였음을 파헤칩니다.

문명(civilization)은 라틴어 civis(시민)와 civitas(도시국가)에서 유래해, 원래는 발달된 상하수도 시스템과 공중화장실을 갖춘 로마 도시민의 ‘도시적 삶의 세련됨’을 뜻하는 차도남, 차도녀 같은 감수성의 언어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 이후 유럽 전체의 보편적 진보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고, 마침내 유럽 외부의 야만적 타자들을 ‘문명화시킨다(civilize)’는 동사적 정복 무기로 변모했습니다.

반면 산업화가 늦었던 독일에서는 전혀 다른 개념이 자라났습니다. 바로 ‘문화(Kultur)’입니다. 기술과 물질에서는 영국과 프랑스를 따라잡지 못하더라도,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성취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선진국에 맞서는 후진국의 방어기제로서 문화 개념이 태어난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묘한 익숙함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종합적인 국력과 경제력, 군사력 등에 있어 세계 상위권을 유지하는 대한민국이지만, 개발도상국 시절부터 한국인은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대단했습니다. K-컬쳐의 세계적 확산에 힘입어 지금은 국뽕이 거의 치사량까지 차오른 수준이죠. 한편으로는 ‘그래, 우리 수준이 이 정도는 된다고’라고 긍정하면서도, 항상 남과 비교해서 더 나아야만 성이 차는 우리 스스로를 깨닫습니다. 국뽕의 이면에는 서구 선진 문명에 대한 오래된 선망과 열패감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아무튼,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문명이라는 말은 영국과 프랑스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자폐적 이데올로기였고, 문화라는 말은 독일의 방어적 이데올로기였습니다. 두 말 모두 처음부터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학술 용어가 아니라 특정한 시대, 특정한 계급, 특정한 국가가 자신의 위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무기였던 것입니다.

💡 문명 vs 문화, 동양과 서구 개념의 굴절사

■ 길잡이 책: 주경철 외 『문명 다시 보기』 (나남)
■ 함께 읽을 책: 노대환 『문명』 & 김현주 『문화』 (소화), 박노자 외 『문명 안으로』 (한길사)
■ 핵심 사유: 본래 동아시아에서 ‘문명(文明)’은 유교적 교화의 덕치를, ‘문화(文化)’는 성리학적 질서로 백성을 다스리는 문치교화를 뜻했습니다. 이 유교적 개념들이 일본을 통과해 개항기 및 식민지 조선을 거치며 서구의 ‘civilization’과 ‘culture’의 번역어로 이식되고 굴절되는 파란만장한 사상사를 추적합니다.

3. 문명과 야만, 누가 선을 긋는가: 폭력과 세련됨의 이중성

인문학자 김봉률 교수는 『문명의 불안』에서 서구 문명의 DNA에 아로새겨진 근원적 폭력성을 ‘헤라클레스’ 신화를 통해 드러냅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유쾌한 근육질 사내가 아니라, 원전 속 압도적 무력과 광기를 지닌 반인반신 헤라클레스입니다. 그가 무찌른 괴물들은 실상 이웃 종족들이었으며, 알렉산더 대왕부터 십자군, 대항해시대 정복자들에 이르기까지 서구 문명이 진보를 외칠 때마다 그 뒤편에는 늘 헤라클레스의 몽둥이가 함께 있었습니다. 정복하는 무력과 아우게이아스 외양간 청소처럼 강물의 흐름을 바꾸는 기술문명적 통제는 한 몸이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제 안에 있는 부끄러운 반사작용 하나를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야만’이나 ‘미개’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바로 유색인종, 그중에서도 아프리카 원주민의 얼굴입니다. 왜 하필 그 이미지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본 순간 저는 적잖이 당혹스러웠습니다. 저는 스스로 인종차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여겨왔으니까요.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이건 저 개인의 은밀한 편견이라기보다, 근대 서구가 문명 대 야만이라는 이분법을 인종의 위계와 나란히 유포해온 결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밀어내려는 자기중심성은 인간 누구에게나 있을 텐데, 그 밀어냄이 하필 특정 피부색과 거의 반사적으로 연결되도록 학습된 것이라면, 이건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이미지 훈련의 결과일 것입니다. 헤라클레스가 무찌른 ‘괴물’들의 자리에, 시대마다 다른 얼굴이 대신 들어와 앉았던 셈입니다.  

이제 우리는 한 걸음 더 들어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명화’라는 과정 자체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인류학자 스탠리 다이아몬드는 이 질문에 대해 “문명은 대외적으로는 정복에서, 대내적으로는 억압에서 기원한다”고 단언합니다. 폭력에 기반한 정복과 억압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이러니처럼 느껴집니다. 18세기 후반부터 서구 열강들이 ‘문명화 사명’을 내세우며 세계 곳곳을 식민지로 만들었던 것이야 말로 야만이 아닐까 합니다.

반면 문명화를 인류의 성취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문명화란 식탁 예절과 감정 통제를 배워가는 인류의 ‘세련화 과정’이라 보았습니다. 맨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던 사람들이 포크를 쓰게 되고, 아무 데나 침을 뱉던 습관이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 과정. 엘리아스에게 문명화란 곧 감정과 충동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가는 인류의 성장 과정이었던 것이죠.  

완전히 대립하는 것 같은 두 의견에 접점을 제시한 의견도 있습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 세련된 예절이라는 기준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여전히 폭력이 작동한다고 짚었습니다. 표준어를 쓰게 하고, 고유한 옷과 장례 풍습을 버리게 하고, 결국 하나의 문화가 다른 문화를 밀어내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문명화된 우리 사회에서도 이러한 배제와 폭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만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 갔을 뿐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저는 ‘문명’이란 ‘야만’을 극복한 상태가 아니라, ‘야만’을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기술에 가까웠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 문명 vs 야만, 폭력의 역사와 대안적 사유들

■ 길잡이 책: 김봉률 『문명의 불안』 (바다출판사)
■ 함께 읽을 책: 김능우 외 『문명 밖으로』 (한길사), 이태주 『문명과 야만을 넘어서 문화 읽기』 (프로네시스), 김기협 『오랑캐의 역사』 (돌베개)
■ 핵심 사유: 서구 문명은 헤라클레스적 정복과 ‘문명화 사명’이라는 가식 아래 야만을 억압하고 발전 신화를 강요해 왔습니다. 그러나 수렵채집의 풍요에서 농경의 노동으로 전환된 인류학적 진실을 파헤치고, 주류 질서를 거부한 탈주자들과 중화 중심주의에 맞선 북방 유목민(‘오랑캐’)의 역동적 역할을 재조명함으로써, 단일한 서구적 문명관을 넘어 다원적 공존과 문화상대주의의 대안적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4. 문명 vs 야만의 이분법을 넘어서자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과 전쟁, 그리고 ‘선진국을 따라잡자’며 내달린 압축 성장의 시간 동안, 우리는 서구식 문명화를 절대적 성취 목표로 여기며, 그 개념 속에 숨겨진 폭력적 시선을 간과해왔습니다.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서구의 기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우리 고유의 가치와 생활방식을 저평가하는 경향이 생겨났고, 이 과정에서 우리 내면에는 깊은 문화적 열패감이 심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대학 시절 마르크스주의로 무장한 채 ‘우리의 현실’을 설명하려 했던 세대입니다.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고 소련이 붕괴하는 등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에도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은 그대로라며 마르크스가 쓴 책에서 뭔가 해답을 찾으려 했죠. 돌이켜보면 그때도 우리는 여전히 서구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고 비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종종 목격하는 과도한 자기 자랑의 정서 ‘국뽕’의 이면에는, 어쩌면 오랫동안 우리를 ‘야만’으로 규정했던 문명의 중심부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는 우리 스스로의 기준에 따른 건강한 자부심이라기보다, 서구가 만들어 놓은 경쟁의 장에서 마침내 승자가 되었다고 느낄 때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감정에 가깝습니다. 서구가 설정한 성공의 기준을 달성했을 때 느끼는 지나친 자부심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아직 그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는 문명과 야만이라는 낡은 이분법과 서구 문명관을 넘어, 우리 자신의 눈으로 우리의 길을 성찰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야 할 과제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다음 10월의 공부에서는 우리의 일상을 촘촘히 지배하고 있는 ‘근대적 시간과 공간의 탄생’ 비밀을 함께 추적해 보겠습니다. 도대체 서구 문명은 무슨 수로 전 세계인의 ‘시간’과 ‘공간’을 이토록 완벽하게 장악하게 되었을까요?  

[시민 R] 20대부터 Revolution을 동경했던 좌파였기에 시민 R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문 연구자가 아닌 보통 시민이지만 이 낯선 시대를 함께 살아가며 스스로 묻고 스스로 공부해나가는 Researcher이자 Realist이고 싶은 시민입니다.